연인사 도창스님

ㆍ작성자	道窓스님
ㆍ작성일	2008-02-12 (화)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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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도와 선시

심우도와선시 /김형중

1. 당송시대 선시가 깃든 선적(禪籍)
중국 당송(唐宋) 시대는 선종의 황금시대였다. 기라성 같은 생불조사(生佛祖師)와 선의 종장(宗匠)들이 출현하였다. 특히 선종이 절정을 이룬 당(唐) 이후인 송대(宋代)에는 그 동안 축적된 선 이론과 사상이 응축되어 사회 문화의 다방면에서 선과의 만남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선이 시대와 사회를 이끄는 중심 이데올로기가 되어 정치·사회·문화·예술·종교·철학·정신 세계를 주도하였다. 선다일미(禪茶一味：선과 다도의 만남), 선서일여(禪書一如：선과 서도의 만남), 선농일치(禪農一致：선과 노동의 만남), 선시일여(禪詩一如：선과 시의 만남), 선화일치(禪畵一致：선과 그림의 만남), 그리고 선시와 선화의 만남 등이 이루어졌다.
특히 시(詩)와 선(禪)과의 이론적 합일이 엄우(嚴羽, 1290∼1364)의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훌륭하게 창출되어 중국시단의 핵심적인 시론(詩論)이 되어, 문예미학 이론과 심미예술 이론이 되었다. 본 논문에서 다루려는 확암(廓庵) 선사의 《십우도(十牛圖)》는 본래 청정한 참마음을 찾는 선 수행의 과정을 잃어버린 소(牛)를 찾는 과정으로 묘사한 선화(禪畵)와 그 그림에 합당한 게송(시)을 적은 선시(禪詩)의 합작품이다. 《십우도》는 불립문자(不立文字)를 표방하는 선종에서 깨달음의 경지인 오도(悟道)의 세계를 절제된 언어 문자와 그림(회화)을 통하여 드러낸 최고의 걸작품이다.
오도(悟道)는 실체가 없는 마음의 행로(行路)를 찾아가기 때문에 그 과정을 구상화(具象化)하는 시도는 어불성설이지만, 이러한 노력은 오도의 길을 가는 수도자나 학습자에게는 필요한 과업으로 효과적인 안내자의 역할이 된다.당송대에 언어 문자를 사용하여 개오(開悟,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한 선서(禪書)가 많이 간행되었다. 이러한 책들은 선 언어의 특징인 함축과 절제 그리고 비유와 상징, 역설, 모순된 언어법 등을 통해 4·5·7자의 시의 형식을 갖춘 게송(偈頌)1)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 깨달음의 내용이나 선의 심오한 세계를 담아내는 사정 때문에 게송이 대단히 관념적이다. 심미적 예술성을 갖춘 선시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선시문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벽암록(碧巖錄)》이나 《선문염송(禪門拈頌)》과 같이 문학성이 뛰어난 선시가 담긴 선적(禪籍)도 있다. 당대에는 승찬(僧璨, ?∼606) 대사의 《신심명(信心銘)》,2)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 대사의 《증도가(證道歌)》,3) 우두법융(牛頭法融, 594∼658) 대사의 《신명(信銘)》,4)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 대사의 《참동계(參同契)》,5) 《초암가(草庵歌)》 등이 있다.
본격적인 선시집이라 할 수 있는 천태한산(天台寒山, 생몰 연대 미상, 당나라 승려, 766∼779에 천태산에 은거)의 《한산시집(寒山詩集)》6)이 있다.송대에는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 대사의 《설두현화상 명각대사 송고집(雪竇顯和尙明覺大師頌古集)》,7) 원오극근(蹟飭분? 1063∼1125, 송대 오조법연의 제자로 임제종 양기파의 고승) 대사의 《벽암록(碧巖錄)》,8) 만송행수(萬松行秀, 1166∼1246, 조동종의 고승) 대사의 《종용록(從容錄)》,9) 확암사원(廓庵師遠) 대사의 《십우도(十牛圖)》10)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고려 때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 국사의 《선문염송(禪門拈頌)》《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이 있는데, 고려 선시문학의 시발점이 되었다.이렇듯 당송시대의 선종의 흥기는 선과 시와 그림(예술)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풍조가 생겨났고, 거기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선시론은 동방미학(東方美學)의 일파를 이루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실제로 당나라 때 왕유(王維)·두보(杜甫)·왕범지(王梵志)·백낙천(白樂天)·교연(皎然)·가도(賈島)·한산(寒山) 등의 대시인이 나타나 그들의 시가 모두 선시가 궁극으로 추구하는 묘오(妙悟)의 경지를 읊은 절창이다. 송나라 때에는 소동파(蘇東坡), 왕안석(王安石), 구양수(歐陽修), 황정견(黃庭堅), 엄우(嚴羽) 등의 선시의 명장이 출현하였다.
급기야 선시와 선화(禪畵)의 만남의 결정품이라 할 수 있는 확암 선사의 《십우도》가 세상에 출현한 것이다. 명(明)·청(淸) 시대 최고의 화가 두 사람을 꼽으라면 청초(淸初)의 석도(石濤)와 팔대산인(八大山人)이다. 두 사람은 모두 화승(畵僧：승려 화가)이다.선의 묘오(妙悟) 경지를 그림으로 일궈낸 이들의 작품은 당송시대의 선의 발전으로 선과 그림이 만나서 명·청에 와서 최고로 꽃을 피운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선과 예술의 만남은 동
방미학의 핵심적 미학이론을 형성하였다.
2. 십우도(十牛圖)와 십우시(十牛詩)
십우도는 참선 수행자가 자신의 본래 착한 마음(自性, 佛性)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과정을 10단계로 정하여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인간의 착한 본성(진실한 자아)을 소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수행자는 천진한 동자(童子)의 모습으로 그렸다. 동자가 집을 뛰쳐나가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서 온갖 어려움을 겪고 결국은 소를 찾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코뚜레로 묶어 잘 길들여서, 소를 타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데서 기우도(騎牛圖) 또는 목우도(牧牛圖)라고 부른다.
십우도는 사찰 벽화에 팔상도(八相圖)11)와 함께 가장 많이 그려지고 있는 불교의 선종화(禪宗畵)이다. 팔상도가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시기로 나누어 그린 불화(佛畵)라면, 십우도는 불교 가운데서도 특히 선종의 마음 찾는 수행 과정을 그린 선종화, 즉 선화(禪畵)이다. 선화(禪畵)는 불화 가운데 선종과 관계가 되는 그림이다. 《화엄경》에는 “마음은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心如工畵師) 모든 세간을 그려낸다(能畵諸世間)”고 하였다.
화사(畵師)들이 불화를 그리는 작업을 수행의 비유로 든다. 그래서 불교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화사(畵師), 부처님의 존상(尊像)을 그리는 화가를 불모(佛母)라고 부른다. 그리는 대상과 화가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불심일여(佛心一如), 선심일여(禪心一如), 물아일여(物我一如)가 되는 경지에서 명품이 탄생한다. 대표적인 선화로는 달마 대사의 모습을 그린 달마도(達磨圖)가 있다.
선화(禪畵)는 무언(無言)·무심(無心)의 경계에서 형성되는 창조적인 예술이다. 그러므로 선화는 꾸밈새가 없고 어떤 의도가 없는 순수 그대로이기 때문에 자연적인 표현이 특징이다. 선화는 외적(外的), 구체적 묘사보다는 내적 공허 무상(無相)이면서 일체 형상의 근원을 그려내어 물체 속에 담겨진 우주의 생명을 드러내서 표현한다. 선화의 지향점은 깨달음이며 참된 자기 발견이다. 반드시 그림 속에서 활발히 생동하며 추구하는 목적이 있다.
달마도(達磨圖)는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마 대사를 그린 그림이다. 그의 모습은 선 수행의 상징이다. 따라서 달마 대사의 모습을 그리는 화가의 마음도, 달마도를 감상하는 마음도 모두 선 수행의 과정에서 깨달음으로 승화되었다.무산(霧山)의 〈달마의 십면목〉12) 10수의 시조는 달마 대사의 선 수행과 경계 그리고 일화 등을 망라하여 읊은 ‘달마시(達磨詩)’이다. 달마도는 수없이 많이 나왔지만, 달마의 연작시는 선시문학사상 무산의 시가 최초이다. 달마 대사의 경지에 가보지 않고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용기이다. 대단한 시도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기개이다.
달마도의 종류는 달마도강도(達磨渡江圖), 면벽달마도(面壁達磨圖), 반신달마도(半身達磨圖), 척리달마도(隻履達磨圖) 등이 있다. 선원(禪院)의 벽화에 많이 그려진 대표적인 선화이다.조선 중기의 화가 김명국(金明國)의 〈달마도〉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선종화로 손꼽힌 작품으로 단숨에 그어내린 듯한 대담하고 힘찬 감필(減筆)로 처리된 활기차고도 강력한 느낌을 자아낸다. 특히 9년 동안의 면벽좌선으로 응결된 달마의 내면적 정신세계가 한두 번의 붓으로 표출되어 있다.
십우시(十牛詩)는 물론 십우도의 각각의 그림에 해당하는 시를 읊을 것인데, 원래는 십우도송(十牛圖頌)이라고 한다. 십우도가 선화의 대표적인 그림이고 십우도송, 즉 십우시가 선시의 대표적인 모델이 되므로 본고에서 중국 송나라 확암(廓庵) 선사13)의 《십우도(十牛圖)》를 중심으로 한국 시승(詩僧)들의 십우시와 비교하며 살펴보도록 하겠다.
한국의 선시 가운데 대표적인 기우시(騎牛詩)는 청허(淸虛)의 〈기우시〉, 경허(鏡虛)의 〈심우송(尋牛頌)〉, 만해(卍海)의 〈심우장 노래〉, 구산(九山)의 〈소 찾는 노래〉 그리고 무산(霧山)의 〈심우도(尋牛圖)〉가 유명하다.십우도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부르며, 십우시도 심우시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십우시, 기우시, 목우시, 심우시 등은 선시 가운데 소를 찾고, 소를 기르고, 소를 타고 집에 되돌아오는 십우도송을 나타내며, 선시의 대명사이다.
소를 주제로 그린 그림은 동양화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목가적(牧歌的)인 전원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도교(道敎)의 그림에도 소 그림은 나타난다. 노자가 소를 타고 가는 기우도(騎牛圖)로 중국 조보지가 그린 〈노자기우도(老子騎牛圖)〉가 대만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
우리 나라 화가 가운데 소를 주제로 그림을 잘 그린 화가는 다음과 같다. 김식(金埴, 1579∼1662)은 조선 중기의 화가 김시(金?의 손자이다. 그는 산수도를 잘 그렸으나, 그를 유명하게 해준 것은 독특한 소 그림이다. 조선 중기의 가장 유명한 소 그림 전문가였기 때문에 웬만한 소 그림은 모두 그의 작품으로 불리어 왔다. 그의 소 그림은 전형적인 한국적 특색을 띠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목우도(故木牛圖)〉가 있다. 할아버지 김시 또한 유명한 화가로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목우도(牧牛圖)〉와 〈심매도(尋梅圖)〉가 있으며, 흰 옷을 입은 동자가 노새(당나귀)를 끌어당기는 그림인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는 보물 783호로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선(鄭敾, 1676∼1779)이 영조 17년(1741) 겨울에 그린 〈사문탈사(寺門脫蓑)〉는 ‘절 문에서 도롱이를 벗다’는 뜻인데, 율곡(1536∼1584)이 세밑 어느 눈 오는 날 검은 소(黑牛)를 타고 절(서울 봉은사)을 찾는 고사(故事)를 생각하여 그린 그림이다. 정선이 율곡의 기우를 그린 일종의 기우도이다.
정선이 1749년 그린 24폭의 《사공시화첩(司空詩畵帖)》은 명필 이광사(李匡師)가 쓴 사공도(司空圖)의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의 글씨가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당나라 때 사공도가 제시한 24시풍격(詩風格)은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동방시단에 큰 영향을 준 시론(詩論)이다. 이해하기 힘든 시론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한 《사공시화첩》도 확암 선사의 《십우도》와 같이 시(선시, 시론)와 그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김홍도(金弘道, 1745∼?)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우리 나라 금세(今世)의 신필(神筆)로 이름을 날린 그의 작품 속에 〈섭우도(涉牛圖)〉와 〈목우도(牧牛圖)〉가 있으며 〈단원풍속도첩〉 가운데 소를 타고 길을 지나가는 선비와 아낙네의 모습이 있다.
3. 확암(廓庵)의 십우도송과 무산(霧山)의 심우도
확암 선사의 《십우도》는 마음을 찾아가는 수행 과정의 경지를 읽어 버린 소를 찾아가는 10과정에 비유하여 그린 십우도상(十牛圖像) 10폭과 그림에 해당하는 게송(선시) 10수, 그리고 게송 10수 앞에 붙인 10편의 자서(머리말)와 확암 선사의 10개 십우도송의 운(韻)에 따라 석고이(石鼓夷) 선사와 괴납련(壞衲璉) 선사가 화운시(和韻詩)로 읊은 20수의 선시, 자원(慈遠) 선사가 책 첫머리에 쓴 서문으로 되어 있는 선서이다. 세 명의 선의 대가가 합작(合作)하여 만든 책이다. 선시와 선화가 합하여 형성된 선시집·선화집의 걸작품이다.
소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암소는 분석심리학에서 대모(大母)를 상징하고, 황소는 아버지를 상징함으로써 모든 것의 근원인 원초적 포괄자, 즉 생성의 모체이자 회귀를 상징한다. 자기원형상(自己原型像)을 상징한다. 소는 재생과 풍요를 상징한다. 소는 농경문화의 상징으로 목가적 전원 풍경과 평화와 여유를 상징한다. 소는 천성이 온순하고 부지런하다. 새끼 송아지를 핥아 주는 자애심(盧삿歆?은 인간의 귀감이 된다.
특히 불교과 소와의 인연이 깊다. 인도의 농경문화와 관계가 깊으므로 불교 경전 속에 자주 소가 등장한다. 지금도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시하고 있다. 성우(聖牛)가 있다. 불교경전에 《방우경(放牛經)》(《아함경》〈방우품(放牛品)〉)이 있으며, 《법화경》에서는 불승(佛乘：부처님이 탄 수레)을 대백우거(大白牛車)에 비유하고 있다. 《유교경》에서는 불교 수행을 목우(牧牛)에 견주어 설명하고 있다. 《십우도》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소에 비유하여, 소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림과 게송으로 읊고 있다. 소와 불교의 선사와의 인연은 노동을 수행의 하나로 보았던 선농일치(禪農一致)에서 더욱 깊어졌다.
고려 불교 조계종(선종)의 중흥조인 보조(普照) 국사 지눌(知訥)의 호가 목우자(牧牛子)이다. 조선 말기 선불교의 중흥자 경허(鏡虛) 선사의 호가 성우(惺牛：깨어 있는 소)이고,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집 이름이 심우장(尋牛莊：소를 찾는 집)이며, 〈심우장〉이란 시조 3수가 있다. 선가(禪家)에서 마음을 찾는 참선 수행의 단계를 소(牛)와 동자(童子)를 각각 본래부터 가지고 태어난 착한 성품을 소(心牛)에 상징하고, 천진한 구도자를 동자에 상징하여 그림으로 구상화(具象化)한 그림이 송(宋)나라 때 생겨난 확암 선사의 《십우도(十牛圖)》이다. 송대에 이르러 깨달음의 과정과 세계를 그림과 시를 통해서 영상적(映像的)으로 도해(圖解)한 작품으로 나타낸 것이다. 송나라 때는 소를 가지고 수행 단계를 묘사했던 풍습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십우도》는 중국·한국·일본의 선종 사찰에 널리 유포되어, 많은 사찰의 벽화로 그려져 있고, 선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확암 선사의 《십우도》 이전에도 소를 통하여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가는 심우도(尋牛圖)와 심우송(尋牛頌)이 수많은 선사들에 의하여 시도되었고, 기록에 나타나 있다. 중국의 경우는 소 대신 말(馬)을 묘사한 ‘십마도(十馬圖)’가 유가(儒家) 선비들에 의해서 그려졌고, 티베트에서는 코끼리(象)를 묘사한 ‘십상도(十象圖)’가 전해져 오고 있다. ‘유가십마도(儒家十馬圖)’는 보명(普明) 선사의 《목우도》 10폭 그림에서 〈목우송〉만 떼내고, 소(牛) 대신 말(馬)만 그대로 복사하듯이 그린 그림이다. 99% 표절이다.
엄밀히 말하면 확암 선사의 〈십우도〉는 자신의 창작품이 아니다. 수많은 선사들의 울력으로 어우러진 최고의 합작품이다. 청거(淸居) 선사의 《목우도》(《종용록》에 언급이 되고 있으나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보명(普明) 선사의 《목우도》, 거철(巨徹) 선사의 〈화백우도송(和白牛圖頌)〉이 있고, 4우도, 6우도, 8우도, 10우도 등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확암 선사와 보명 선사의 《십우도》이다.
확암 선사의 《십우도》는 청거 선사의 〈목우송(牧牛頌)〉을 모방했는데, 후에 이것이 중심이 되어 거기에 〈화운송(和韻頌)〉을 많은 사람이 붙였다. 확암 선사의 〈십우도송〉의 각송(各頌)마다 석고희이(石鼓希夷) 선사와 괴납대련(壞衲大璉) 선사의 〈화운송〉이 각각 10수씩 붙어 있다. 보명의 《목우도》와 확암의 《십우도》는 많은 차이가 있다. 《목우도》는 마지막 열번째만 원(圓)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반해, 《십우도》는 처음부터 마지막 열번째까지 모두 원(圓) 안에 묘사하였다. 원(圓, ?의 형상(圓相)은 선가에서 깨달음(진리, 마음)을 상징하는 약속된 부호이다.
보명 선사의 《목우도》에서는 검은 소(黑牛)가 조련되어, 하얀 소(白牛)로 되는 과정을 그
리고 있다. 이는 원래 검은 마음을 수행을 통해 잘 닦아서 하얀 마음으로 되어가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점수적(漸修的) 수행법이다.
보명 선사의 《목우도》는 ①미목(未牧：아직 소를 길들이지 않은 상태), ②초조(初調：소를
일차로 길들이기 시작한 상태), ③수제(受制：소가 목동의 말을 듣는 상태), ④회수(廻首：자신을 돌이켜 보아 반조하는 마음 상태), ⑤순복(馴伏：순순히 소가 잘 따르니 고삐가 필요 없는 상태), ⑥무애(無碍：소와 목동이 하나되어 서로 장애가 되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 ⑦임운(任運：임의자재 하여 내버려 두어도 저절로 되는 상태), ⑧상망(相忘：무심·무아의 경지에서 서로를 잊는 상태), ⑨독조(獨照：나홀로 비추니 소가 사려진 유희삼매의 상태), ⑩쌍민(雙泯：소와 내가 모두 사라진 최고의 견성 경지)으로 되어 있다.
보명 선사의 《목우도》가 확암 선사의 《십우도》와 다른 점은 열번째 최고 단계인 쌍민이 《십우도》의 여덟째 단계인 인우구망(人牛俱忘)에서 끝나는 것이다. 쌍민과 인우구망은 깨달음 수행으로서는 최고 단계인 원각(圓覺)의 경지이지만, 깨달은 후의 불교의 목표인 중생 구제의 보살행이 없다. 보명 선사의 《목우도》는 점수돈오(漸修頓悟)이며 관심적(觀心的)인 조동선(曹洞禪)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소를 기르는 일 즉, 수행과 정진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확암 선사의 《십우도》는 ①심우에서 ⑧인우구망까지 철저한 수행과 깨달음을 완성하여, 마지막 ⑨반본환원과 ⑩입전수수에서 깨달음의 이상세계를 현실 세계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계합한 것이다. 이상세계(진리세계, 불국정토)는 마조(馬祖) 선사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에서 처럼 우리가 사는 삶의 주변인 현실 속에 있다.
보명 선사의 《목우도》는 칠언절구 10수로 되어 있는데, 정확하게 시의 형식에 따라 압운(押韻)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시로서 문학적인 성취도 높다. 보명 선사의 《목우도》는 정적(靜的)이고 종교적인 성격을 띠면서 사색적인데 비해서, 확암 선사의 《십우도》는 전편을 통해 전개가 역동적이고 구체적이고 게송 역시 문학적인 성격이 강하다. 확암 선사의 《십우도》는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서 소를 발견하고, 잡아 끌어서 마침내 소와 내가 하나가 되어 결국 공적이 되고, 다시 당초의 일상생활로 되돌아가는 차례를 그리고 있다. 전자는 조동종의 묵조선(默照禪)을 반영하고 있고, 후자는 홀로 벗어나 아무 것도 걸리지 않는 임제종의 간화선(看話禪)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확암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문헌이 단편이기 때문에 그의 전기를 자세히 알기가 어렵다. 《오등회원(五燈會元)》에 보이는 그의 전기는 대수원정(大隨元靜) 선사의 법맥을 이은 제자로 《십우도》와 그가 지은 게송이 세상을 돌아다닌다고 하는 정도만 밝히고 있을 뿐이다. 그의 생몰연대에 관한 기술이 없다. 그러나 남송(南宋) 고종(高宗) 황제 소흥(紹興) 5년(1135)에 입적한 대수원정 선사의 제자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임제 선사의 12대 법손임이 확실하다. 확암의 법호는 양산사원(梁山師遠)이다.
한국의 조계종(曹溪宗)은 고려 말기 원나라에 유학한 태고보우(太古普愚) 선사와 나옹혜근(懶翁慧勤) 선사가 임제종 16대 법손인 석옥청공(石屋淸珙) 선사와 평산처림(平山處林) 선사의 법맥을 이은 임제종 계승 종단이고, 조선 불교의 증흥조인 휴정(休靜) 또한 확고한 임제종의 숭배자였기 때문에 한국불교에서는 확암의 《십우도》가 널리 유포되었다.
《십우도(十牛圖)》는 중국 선종의 정통선 사상을 잘 나타낸 선서(禪書)이다. 《신심명(信心銘)》《증도가(證道歌)》《좌선의(坐禪儀)》와 함께 ‘선종사부록(禪宗四附錄)’으로 선가에서 널리 읽히는 선의 입문서의 역할을 하였고, 각자의 수행을 점검하는 지침서가 되었다.
〈심우(尋牛)〉의 서문(序文)에서 확암 선사는 “애초에 잃지 않았는데 어찌 찾을 필요있겠는가. 깨달음을 등진 결과 멀어지게 되었구나. 티끌 세상을 향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네(從來不失何用追尋由背覺以成疎在向塵而遂失).”라고 하였다. 이는 육조 혜능(六祖慧能) 대사가 읊은 “본래상청정(本來常淸淨：본래 타고난 본성이 청정하다)”이니 먼지·번뇌가 낄 수 없음을 읊은 것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한 물건도 없다)이다.
사람의 본성은 닦아서 밝아지는 것이 아니다. 수행하여 깨쳐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태어날 때부터 밝은 성품이다. 본래 부처이니 잠깐 미혹하여 그런 자신을 망각했던 것을 돌이키면 그대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심우송〉에서는 그런 내 마음을 찾겠다고 하고 나서는 모습이 마치 소를 타고서 소 등 위에서 소를 찾는 어리석음과 같다고 읊고 있다.
십우도》의 ‘제7,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忘牛存人)’와 ‘제8, 사람도 소도 다 잊다(人牛俱忘)’ 그리고 ‘제9, 근원으로 되돌아가다(返本還源)’는 《임제록(臨濟錄)》에 나오는 ‘사료간(四料簡)’을 선시로 풀이하고 있다. 선종에서 수행자가 마음을 깨달은 최고 경계를 내보인 ‘사료간’이나 ‘본래 청정한 자성(自性)’을 선시로 노래한 《십우도》는 혜능 선사와 임제 선사의 정통선의 가풍을 내보이고 있는 최고 선장(禪藏)임에 틀림없다.
확암의 《십우도》에는 칠언절구의 송(頌)이 있다. 이 송은 훌륭한 선시(禪詩)이며, 선가의 시승(詩僧)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십우시 가운데 대표적인 4수만 감상하도록 하겠다. 확암 선사의 〈십우도송〉과 석고이 선사, 괴납련 선사의 〈화운송(和韻頌)〉을 살펴보자.
1) 심우송(尋牛頌：소를 찾아 나서는 노래)
아득히 펼쳐진 숲을 헤치고 찾아 나서니 茫茫撥草去追尋
물은 넓고 산은 먼데 길은 더욱 깊네. 水闊山遙路更深
힘이 다해 더 이상 찾을 곳이 없는데 力盡神疲無處覓
어둔 밤 나뭇가지에서 매미울음만이 들려오네. 但聞楓樹晩蟬吟
－ 확암 선사, 〈심우〉
확암 선사의 이 〈심우송〉은 7언절구이다. ‘심(尋)’ ‘심(深)’ ‘음(吟)’으로 정확히 압운하였다. 잃어버린 소를 찾아서 망망한 숲을 헤치고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찾아가는 동자는 지칠대로 지쳤다. 마지막 결구에서 희망의 메시지인 매미울음소리가 들린다. ‘선음(蟬吟)’은 상징적으로 깨달음을 약속하는 신호음이다.
석고이 선사와 괴납련 선사의 〈화운송〉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오로지 급하게 밖을 향해 찾으나 只管區區向外尋
발밑 진흙수렁이 깊은 줄 몰랐네. 不知脚底已泥深
수없이 방초 우거진 석양 속에서 幾回芳草斜陽裏
고향 노래를 부질없이 불러 봤네. 一曲新豊空自吟
－ 석고이 선사, 〈화심우〉
본디 자취도 없는데 누가 찾는가 本無遯軟잡쥐?
우거진 등넝쿨 깊은 곳에 잘못 들어 왔네. 誤入煙蘿深處深
손으로 코 잡고 함께 돌아가는 나그네가 手把鼻頭同歸客
물가 나무 아래서 스스로 고요히 자문자답하네. 水邊林下自沈吟
－ 괴납련 선사, 〈화심우〉
기구(起句)에 ‘심(尋)’, 승구(承句)에 ‘심(深)’, 결구(結句)에 ‘음(吟)’으로 화운한 화운시이다. 즉, 차운시(次韻詩)이다. 전형적인 선시의 대부분은 4언·5언·7언의 시 형식만 취했을 뿐 성률(聲律), 압운(押韻), 평측(平仄) 등을 무시하기 때문에 시문학적 우수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선시의 목표가 심오한 깨달음의 세계와 불립문자(不立文字)의 세계인 절대경을 읊기 때문에 문학적인 성취보다는 그 뜻을 나타내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관념적이고 직접적인 선의 용어가 시어로 나타난다.
시적 성취를 얻은 선시로는 사대부와의 교류를 읊은 교류시(交流詩), 차운시(次韻詩, 和韻詩)가 있다. 이런 시는 시의 격률과 형식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고의 선시는 시의 형식과 선취(禪趣) 모두를 잘 갖춘 운수시(雲水詩)나 산거시(山居詩), 우음시(偶吟詩)이다. 자신의 오도의 경계를 운수자연의 풍물에 의탁하여 꾸밈이 없이 읊은 시가 묘오(妙悟)를 얻은 명품이 된다.
확암의 〈심우송〉이나 이 시의 운에 따라 화음(和韻)하여 읊은 석고이 선사와 괴납련 선사의 화운시는 내용이나 시의 격률로 보아 훌륭한 선시이다.〈심우(尋牛)〉는 소, 즉 자신의 본래 마음을 찾아나서는 선 수행자의 첫걸음을 표현한 것이다. 초발심(初發心)이다. 석고이 선사는 자신의 마음을 찾는데 밖을 향해 찾지(向外尋) 말라고 하였고, 괴납련 선사는 본래 자취도 없는 마음(本無遯?을 찾아서 등넝쿨 속으로 잘못 들어 왔다고 읊고 있다. 결구에서 확암 선사는 ‘만선음(晩蟬吟)’으로 압운하고, 석고이 선사는 ‘공자음(空自吟)’, 괴납련 선사는 ‘자침음(自沈吟)’으로 압운하였는데, 이는 소(자신의 본래 마음)를 밖을 향해서 찾지 말고,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自] 찾아야 함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말기 경허(鏡虛) 선사는 〈심우송(尋牛頌)〉을 두 종류 읊었다. 〈심우(尋牛)〉를 다음과 같이 각각 읊고 있다.
가히 우습구나. 소를 찾는 자여 可笑尋牛者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네. 騎牛更覓牛
볕 비낀 방초 길에 斜陽芳草路
이 일이 실로 길고 길구나. 那事實悠悠
－ 경허 선사, 〈심우 1〉
본래 잃지 않았거니 어찌 다시 찾으리오 本自不失何用更尋
다만 저 찾는 것이 바로 비로자나의 스승이로다. 瀨窮蛔솨疹嶝吃?
푸른 산 푸른 물 꾀고리노래 제비의 지저귐 山靑水綠鶯吟燕語
두두물물이 그 소식을 누설하누나. 쯧쯧! 頭頭漏洩 ?
－ 경허 선사, 〈심우 2〉
경허 선사는 〈심우송〉에서 본래 잃을 것이 없는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렸다고 찾아나서는 어리석음을 읊고 있다. 삼천대천세계의 두두물물이 그대로 진리를 설하고 있는 화엄세계를 설하고 있다.〈심우〉에서 읊은 1·2구는 휴정(休靜) 대사가 제자 법장(法藏) 대사에게 준 전법게로써 《청허당집》에 〈법장대사〉14)라는 제목으로 나오고 있다. 이 시를 소요태능(逍遙太能) 선사에게도 준 것이다.
선종에서 일체 중생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인데도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무한광명이요, 무진보장(無盡寶藏)인 청정자성을 찾지 않고, 도를 구하고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만 내달리는 어리석은 수행자를 가르켜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어리석은 사람(騎牛更覓牛)’이라 한다.
《육조단경》에 “모든 법(法)이 모두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있거늘, 어찌 자기의 마음을 따라서 진여(眞如)의 본성을 단번에 나타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菩薩戒經)》에서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였으니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면 스스로 부처의 도를 성취하는 것이니, 곧 활연히 깨쳐서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고 하였다.
확암 선사는 육조혜능의 법손으로 육조선(六祖禪：남방선)의 돈오수행법(頓悟修行法)에 의거하여 《십우도》를 저술하었다.《청허당집》 권1(묘향장판)에는 〈법장대사(法藏大師)〉란 시가 2회나 반복되어 편집되었으며 또한 휴정이 많은 제자에게 이 법게를 주었던 모양이다. 또한 《소요당집》(2쪽)에〈새일선화지구(賽一禪和之求)〉라 하여 소요대사가 85세 되는 병술년(丙戌年) 가을에 전 2구와 후 2구를 바꾸어 제자에게 주고 있다. 기승구(起承句)에서는 자성의 진면목을 설하고, 전결구(轉結句)에서는 아직 선지(禪旨)에 입문도 못하고, 소를 타고서 소를 찾는 《십우도》의 내용을 인용하여 자성을 찾는 길을 일깨워주고 있다.
휴정 대사의 ‘기우가’는 전형적인 선시로 선사의 격외선어(格外禪語)를 통하여 자성의 진면목을 설하고 제자에게 그 세계를 찾으라고 가르친 전법게이다.경허 선사의 〈심우송〉은 1·2구를 휴정 대사의‘기우가’에서 그대로 용사(用事)하였으니, 창작이 생명인 문예미학에서 문학적 측면에서는 평론할 수 없다. 소요태능 대사와 마찬가지
로 품위가 높은 선게(禪偈)를 제자에게 그대로 전수하는 것은 선가의 관례인 것이다.만해가 그의 자택인 ‘심우장(尋牛莊)’을 노래한 〈심우장〉 3수의 시조가 있다.
잃을 소 없건만은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은 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쏘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 만해 선사, 〈심우장 1〉
소 찾기 몇 해던가 풀길이 어지럽구야
북악산(北岳山) 기슭 안고 해와 달로 감돈다네
이 마음 가시잖으매 정녕코 만나오리.
― 만해 선사, 〈심우장 2〉
찾는 마음 숨는 마음 서로 숨박꼭질할 제
곧 아래 흐르는 물 돌길을 뚫고 넘네
말없이 웃어내거든 소잡을 줄 아옵서라.
― 만해 선사, 〈심우장 3〉
〈심우장 1〉은 초장 “잃은 소 없건만은 찾을 손 우습도다”는 우리의 본래 자성은 불생불멸이고 불구부정이다. 따라서 잃어버릴 것도 찾을 것도 없는 자리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소를 타고 소의 등 위에서 소를 찾듯이 마음을 가지고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찾는다.
중장은 설사 마음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실체가 없는 마음을 찾아서 지닐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종장의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는 중국 선종의 6조 혜능의 자성게(自性偈)의 뜻을 용사(用事)한 것이다. 혜능의 “본래무일물 하처염진애(本來無一物何處染塵埃：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물들겠는가)”는 마음(一物)은 실체가 없어서 번뇌망상의 진애가 낄 수가 없으므로 닦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찾을 것도 잃을 것도 없
는 마음의 본래자리를 읊은 것이다.
〈심우장 2〉의 초장은, 마음을 찾아 참선 수행하느라 여러 해를 보내면서 그 동안 번뇌와 갈등 속에 시름한 것을 ‘소 찾기 몇 해던가 풀길이 어지럽구야’로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중장은 북악산에 해와 달이 감도니 멀지않아 종장에서 결구했듯이 소(마음)를 찾아 만나리라고 읊은 것이다.
〈심우장 3〉 초장은 소(마음)를 찾아 고심하는 노력을 표현한 것이고, 중장은 돌길을 뚫고 흐르는 물처럼 어지러운 풀길 속을 뚫고 소를 찾아 가깝게 다가가고 있음을 멋지게 묘사한 것이다. 종장 “말 없이 웃어내거든 소 잡은 줄 아옵서라” 역시 선사의 침묵과 무언의 시어를 통해 소(마음)을 잡아 깨달음을 완성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깨달음의 환희를 “말없이 웃어내거든”이라고 표현한 것이다.〈실제(失題)〉에서도 마음을 소에 비유하여 읊고 있다.
비낀 볕 소 등 위에 피리 부는 저 아이야
너의 소 짐 없거든 나의 시름 실어주렴
싣기는 어렵잖아도 부릴 곳이 없어라
― 만해 선사, 〈실제(失題)〉
‘비낀 볕 소 등 위에 피리 부는 저 아이야’는 《십우도》의 ‘6단계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기우귀가(騎牛歸家)〉’를 용사한 것이다.구산(九山) 선사가 〈소 찾는 노래(尋牛頌)〉을 상당법문(上堂法門, 1972년 음력 11월 15일)으로 설한 노래는 다음과 같다.
산 높고 물 깊으며 풀숲조차 울창한데
아무리 애를 써도 찾을 길이 막연하네.
애달픈 정 달래려고 두견새를 듣노라.
― 구산 선사, 〈심우송〉
구산 선사는 확암 선사의 〈심우도송〉의 내용을 우리말로 알기 쉽게 시조 형식으로 의역해 놓은 것이다. 매미울음 소리를 두견새로 바꿔 놓았다.무산(霧山) 조오현(曺五鉉)의 시집 《심우도(尋牛圖)》에 나오는 〈무산 심우도〉 10수 가운데 첫번째 시 〈심우(尋牛)〉는 다음과 같다.
누가 내 이마에
좌우 무인(拇印)을 찍어 놓고
누가 나로 하여금
수배하게 하였는가
천만금 현상으로도
찾지 못할 내 행방을.
천 개 눈으로도 볼 수 없는 화살이다.
팔이 무릎까지 닿아도 잡지 못할 화살이다.
도살장 쇠도끼 먹고 그 화살로 간 도둑이어.
― 조오현, 〈무산 심우도〉, 〈심우〉
무산의 《심우도》는 잃어버린 본래 마음을 찾는 과정을 보통 《십우도》에서는 소(牛)를 상징으로 하여 찾아가는 과정으로 묘사하는데, 아예 소는 없고 전혀 다른 시적 구상을 통해 창조적으로 마음을 찾아가고 있다.그는 마음 찾는 공부를 달아난 도둑을 수배하고, 현상금을 걸어 놓고 수사, 체포하는 과정으로 읊고 있다. 도둑은 용의주도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또한 도둑놈의 마음을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무산은 〈견적(見跡), 발자취를 보다〉에서 “명의(名醫), 진맥(診脈)으론 끝내 알 수 없는 도심(盜心) 그 무슨 인감(印鑑)도 없이 하늘까지 팔고 갔나”라고 읊고 있다. 아무리 도둑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잘 도망을 간다고 해도 지혜 있고 끈질긴 형사는
기필코 찾아내고야 만다. 도망가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무산의 〈심우도〉는 필사의 힘으로 도둑이 쫓기고 쫓는 긴장감 있는 시이다.
〈심우〉 1연 “누가 내 이마에 좌우 무인(拇印)을 찍어 놓고”는 옛날 형벌 중의 하나인 죄인의 이마에 죄인의 표시로 인두불을 지지는 형벌로 표현하였다.2연 “누가 나로 하여금 수배하게 하였는가”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찾아 나선 것을 죄인(도둑)을 수배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3연 “천만금 현상으로 찾지 못할 내 행방을”은 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찾겠다고 수배하고 천만금 현상금까지 걸어 놓았지만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도둑놈 찾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다.4연에서 무산은 마음을 화살로 상징하여 표현하고 있다. 화살을 빠르게 흐르는 세월에 비유하는 경우는 있으나, 사람의 마음으로 상징한 것은 참으로 특이하다. 마음이 빠르게 나는 화살처럼잡을 수 없는 것이라서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화살은 마음을 상징한다. 세월을 나는 화살에 비유한다. 화살처럼 빨리 흐르는 세월이란 뜻이다. 세월은 시간이다. 깨닫고 보면 시간이란 우리 마음과 같이 실체가 없는 것으로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관념이다.
《금강경》에서 “과거심(過去心)은 지나가 버린 마음이므로 불가득(不可得)이요, 미래심(未來心)은 아직 오지 않은 마음이므로 불가득(不可得)이요, 현재심(現在心) 또한 마음이란 실체가 없음으로 불가득(不可得)이다”고 하였다. 시간이 과거·현재·미래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과거·현재·미래는 인간이 만들어낸 구분일 뿐이다. 12시(時)나 24시, 365일은 인간의 편리를 위해 약속해 둔 시간 표시이다. 시간은 우리 마음과 같이 실체가 없어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사물이 변화하는 정도에 따라 사람들은 시간이란 약속된 관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무산은 마음을 화살로 상징하였다. 대단한 비약이요, 상상이다. 그의 시어는 고도로 응축되고 비약된 상징을 통해서 생성된다. 그래서 마치 화두를 푸는 것처럼 그의 시와 독자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만 그의 시를 해석할 수 있다.
“천 개 눈으로도 볼 수 없는 화살이다. 팔이 무릎까지 닿아도 잡지 못할 화살이다. 도살장 쇠도끼 먹고 그 화살로 간 도둑이어”마지막 4연에서 이렇게 마음을 표현하여 시를 갈무리하였다. 참으로 수수께끼보다 더 어렵고, 화두를 푸는 일보다 더 어려운 알 수 없는 시어의 결합이다.
“천 개 눈으로도 볼 수 없는 화살”은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보살의 천안통(天眼通)으로도 볼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읊은 것으로, 《십우도》〈제8, 사람도 소도 다 잊다(人牛俱忘)〉에서 확암 선사가 게송 앞에 쓴 서문에서 “관세음보살의 천안이라도 엿보기 어려워라(天眼難竅)”고 한 것에서 용사(用事)되었다.
“팔이 무릎까지 닿아도 잡지 못할 화살”은 부처님의 몸이 보통 사람과 다른 뛰어난 특성이 32가지가 있는데 이를 삼십이상(三十二相)이라고 한다. 삼십이상 가운데 아홉째가 ‘팔을 펴면 손이 무릎까지 내려간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것은 팔이 무릎까지 내려가는 부처님의 신통력으로도 잡지 못할 마음이란 뜻이다.
“도살장 쇠도끼 먹고 그 화살로 간 도둑이어”는 소머리를 쳐서 죽이는 도살장의 소 도끼를 먹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은 우리의 마음(화살) 밖에 없다.‘찾는다’는 말을 ‘도둑질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남의 집 귀한 딸을 훔쳐가는 신랑은 멋진 도둑놈이다. 내 마음 깊은 곳 여래장식(如來藏識) 속에 숨은 부처의 보주(寶珠)를 밤을 새워가며 찾는 수행자도 밤바다 용의주도하게 남의 집 보물을 터는 도둑과 같다.
무산은 천하를 손바닥 뒤집듯이 할 수 있는 여의심주(如意心珠)를 무금선원에서 밤마다 잠을 자지 않고 도살장의 쇠도끼를 먹으며 훔치는 도둑이다. 무산의 〈심우송〉은 삼세의 부처와 조사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무산의 묘한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 귀신도 엿볼 수 없는 무산의 마음이요, 감히 어떤 시인도 흉내낼 수 없는 ‘마음 찾는 노래’이다.
“도살장 쇠도끼 먹고 그 화살로 간 도둑이어”는 〈심우도〉의 소가 도살장에서 소를 잡는 쇠도끼로 나타났다. 쇠도끼를 먹고 달아난 도둑놈인 자신의 마음을 찾으라는 뜻이다.무산의 시는 설명이 없어 대단히 어렵다. 한국 선시문학사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시가 창조적이다. 전혀 모방이 없다. 그의 시를 잘 살피지 못하면 그의 시에서 소의 그림자도 찾지 못하고 만다. 그러나 그의 시에 나타난 시어 속의 약속된 선가 언어의 비밀을 알고 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는 시다.
2) 기우송(騎牛頌：騎牛歸家,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노래)
확암 선사의 원시(原詩)와 석고이 선사, 괴납련 선사의 화운시를 순서대로 살펴보자
소를 타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오는데 騎牛稼釪관십?
피리소리 저녁놀에 실려가네. 羌笛聲聲送晩霞
한 곡조 한 가락 한없는 뜻을 一拍一歌無限意
그 누가 알리요, 나 홀로 즐길 뿐이네. 知音何必鼓脣牙
― 확암 선사, 〈기우귀가〉
앞 언덕을 가리키니 바로 집이라 指點煎披卽是家
이윽고 오동피리 불며 석양 속에 나타나네. 旋吹棟角出煙霞
홀연히 환향곡으로 바뀌나니 忽然變作還鄕曲
곡조를 아는 사람, 백아보다 나으리. 未必知音肯伯牙
― 석고이 선사, 〈화기우귀가〉
거꾸로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니 倒騎得得自歸家
삿갓과 도롱이도 저녁놀에 물들었네. 蒻笠삳鷸粟벋?
걸음마다 맑은 바람에 가는 길이 편안하니 步步淸風行處穩
빈약한 촌초로선 입을 열지 못한다네. 不將寸草掛盾牙
― 괴납련 선사, 〈화기우귀가〉
《십우도》 가운데 여섯번째인 〈기우귀가〉의 시와 그림은 예술적으로는 최고의 경지이다. 목동이 소 등 위에서 피리를 불고 석양에 지나가는 목가적인 풍경은 불교 선가에서뿐만 아니라, 노자의 도가를 비롯하여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 평화롭고 여유 있다. 그림 속에 시가 있고, 노래가 있다. 또한 확암 선사의 기우송 속에는 한 폭의 동양화가 있는 선시의 최고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기우송의 전거는 《전등록》 권9와 《오등회원》 권4에 나오는 백장 회해(百丈懷海, 702∼ 814) 선사와 대안(大安) 선사와의 대화이다.
대안 선사가 백장 선사에게 나아가 물었다.
“저는 부처를 알고 싶습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알고 난 뒤에는 어떻습니까?”
“사람이 소를 타고서 집에 돌아가는 것과 같다.”
“시종일관 어떻게 온전하게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도록 보호임지(保護任持) 합니까?”
“소 치는 사람이 막대기로 소를 감시해서 남의 밭을 침범치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부처를 아는 것은 마음이 부처이므로 마음을 찾는 심우(尋牛)이다. 소(마음)를 찾았으면 소를 타고 본래 마음의 고향인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이것이 ‘기우귀가(騎牛歸家)’이다.찾은 마음(소)을 잘 간직하는 일은 소의 코를 코삐에 꿰어 소를 온순하게 잘 길들이는 목우(牧牛)이다. 목동의 피리소리는 흥을 더해 준다. 피리소리는 깨달음의 소리이다. 확암 선사는 ‘오랑캐 피리소리(羌笛聲)’라고 표현했는데, 석고이 선사는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노래
(還鄕曲)’라고 비유하였다. 그러니 이 노래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열자》〈탕문편〉에 나오는 고사인데 거문고의 명수인 백아(伯牙)가 튕기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듣는 사람은 오직 그의 친구 종자기(種子期) 뿐이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알고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고사이다. 그래서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기(知己) 또는 지음(知音)이란 말이 생겨났다. 선가에서 지음은 깨달음의 경지를 서로 알아 볼 수 있는 도가 높은 스승이나 도반(道伴)을 뜻한다.
‘환향곡’은 자기 마음의 본성으로 돌아감을 비유한 노래이다.무산의 〈기우귀가〉는 대단히 신선하고 창조적이다.
징소리로 비 개이고
동천(洞天) 물소리 높던 날
한 웃음 만발하여
싣고 가는 이 소식을
그 고향 어느 가풍(家風)에
매혼(埋魂)해야 하는가.
살아온 죄적(罪迹) 속에 못살린 그 사구(死句)다
도매(盜賣)할 삶을 따라 달아난 그 탈구(脫句)다
그 무슨 도필(刀筆)을 잡고도 못 새길 양음각(陽陰刻)이어.
― 조오현, 〈무산 심우도〉, 〈기우귀가〉
무산은 피리소리를 우리의 토속적인 징소리로 바꿔 버렸다. 그의 시어는 일상적인 생활언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당송시대 선어록에 나타난 선사들의 언어는 무식한 민중들의 토박이 언어였다. 민중의 토박이 언어를 통해서 무식한 그들을 깨달음의 문으로 인도하였던 것이다.
2연에서 “한 웃음 만발하여 싣고 가는 이 소식을” 하였는데, 이 시에서는 소가 나타나 있지 않지만 징소리에 담긴 깨달음의 소식을 소가 싣고 가고 있는 것이다. 깨달음의 본래 마음자리 집(고향, 가풍)으로 싣고 간다. 이 소식은 조각칼로도 새길 수 없는 세계이다. 무어라고 설할 수 있는 한 마디가 아니다. 불립문자(不立文字)의 세계다. 무산은 4연에서 그렇게 읊고 있는 것이다.
3) 반본환원송(返本還源頌：본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노래)
확암 선사의 원시와 석고이 선사, 괴납련 선사의 화운시를 순서대로 살펴보자.
본래 자리로 돌아와 보니 공연히 애썼구나. 返本還源已費功
차라리 눈멀고 귀먹었던들 이 고생 안했겠네. 爭如直下若盲聾
집 앞에 있는 물건(사물)을 보지 못했구나 庵中不見庵前物
물은 저절로 흐르고 꽃은 저절로 피어 있네. 水自茫茫花自紅
― 확암 선사, 〈반본환원〉
신령한 기틀은 유무의 공에 떨어지지 않아서 靈機不墮有無功
빛깔도 보고 소리도 듣는데 어찌 귀머거리이겠는가! 見色聞聲豈用聾
어젯밤 금까마귀(태양)가 날아서 바다로 들어가니 昨夜金烏飛入海
새벽 하늘에 옛날과 같이 둥근 해가 떠 있도다. 曉天依舊一輪紅
― 석고이 선사, 〈화반본환원〉
기관을 다 써서 모든 노력을 했어도 用盡機關費盡功
또랑또랑한 그 일은 귀머거리만 못하네. 惺惺底事不如聾
짚신끈이 다 해진 채 돌아오는 길에는 草鞋根斷來時路
새들이 울지 않는데 꽃들만 붉게 피었네. 白鳥不啼花亂紅
― 괴납련 선사, 〈화반본환원〉
불교의 궁극의 목표는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중생구제(정토구현)이다. 《십우도》의 ①∼⑧까지는 본래 마음자리의 정체를 깨닫는 수행 과정, 즉 견성성불하는 과정이고, ⑨∼⑩은 중생구제를 위한 보살행이다.
아홉번째의 반본환원(返本還源)은 본래 마음자리로 되돌아온 노래이다. 확암선사는 “집 앞에 있는 물건을 보지 못했구나. 물은 저절로 흐르고 꽃은 저절로 피어 있네.”라고 읊었다. 본래자리로 되돌아와서 살펴보니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부처의 자리요, 내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다. 물은 저절로 흐르고 꽃이 저절로 피듯이 온 세상 그대로가 여래가 출현하는 화엄성기(華嚴性起)의 모습이고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세계임을 “물은 저절로 흐르고 꽃은 저절로 피어 있네.”라고 읊고 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소동파가 계성시(溪聲詩)에서 “시냇물 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요, 산빛은 깨끗한 법신일세(溪聲便是廣長舌山色豈非淸淨身)”라고 읊었듯이 산하대지 두두물물이 진리의 화엄세계이다.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하듯이 인간이 이상세계, 관념의 이데아를 실현하는 곳은 현실세계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큰 깨달음이요, 보살행의 첫단계이다.무산은 아홉번째 〈반본환원〉을 다음과 갚이 읊었다.
석녀(石女)와 살아 백정(白丁)을 낳고
금리(金利) 속에 사는 뜻을
스스로 믿지를 못해
내가 나를 수감(收監)했으리
몇 겁(劫)을 간통(姦通)당해도
아, 나는 아직 동진(童眞)이네.
길가의 돌사자가 내 발등을 물어
놀라 나자빠진 세상 일으킬 장수가 없어
스스로 일어나 앉아 만져보는 삶이여.
― 조오현, 〈무산 심우도〉, 〈반본환원〉
1연 “석녀(石女)와 살아 백정(白丁)을 낳고 금리(金利) 속에 사는 뜻을”, 여기서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보살)가 금리 속에 사는 뜻은 세상 잇속 밝혀 산다는 뜻이다. 즉 보살이 세상의 진흙탕 속에 사는 뜻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듯이 무산은 3연에서 “몇 겁을 간통당해도 아, 나는 아직 동진이네.”라도 읊은 것이다.
석녀는 현실 속에 존재할 수 없는 모순어이다. 돌여자는 깨달음을 상징한다. 무산이 도살장에서 소를 잡는 백정을 석녀와 살아 낳았으니, 소를 찾는 일은 이미 끝났다. 2연에서 “스스로 믿지를 못해 내가 나를 수감했으리”는 마음(소)을 찾았으니, 소가 이상세계인 허공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자신의 마음을 현실 속에 다시 묶어둔 것을 “나는 수감했다”고 표현한 것이다. 깨달음의 이상세계에서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그래서 마지막 연에서 “스스로 일어나 앉아 만져보는 삶이여”라고 읊은 것이다.《십우도》의 꽃은 마지막 10단계인 ‘보살이 중생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노래인 입전수수(入廛垂手)’이다.
4) 보살송(菩薩頌：入廛垂手, 보살이 중생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노래)
확암 선사의 원시와 석고이 선사, 괴납련 선사의 화운시를 순서대로 살펴보자.
맨가슴 맨발로 마을로 들어가니 露胸跣足入廛來
흙투성이라도 얼굴은 함박웃음 가득하네. 抹土塗灰笑滿욍
신선이 사용하는 신통한 비법을 쓰지 않아도 不用神仙眞秘訣
당장 마른 나무에서 꽃을 피게 하네. 直敎枯木放花開
― 확암 선사, 〈입전수수〉
이놈은 틀림없이 이류에서 왔구나. 者漢親從異類來
말의 얼굴과 당나귀 뺨이 너무나 분명하다. 分明馬面與驢욍
질풍처럼 쇠몽둥이를 한 번 휘둘러서 一揮鐵棒如風疾
이 세상 모든 문들을 두들겨 여네. 萬戶千門盡擊開
― 석고이 선사, 〈화입전수수〉
소매 속의 금방망이가 정면에서 떨어지니 袖裏金鎚劈面來
오랑캐 말, 우리말로도 웃음은 볼에 가득하네. 胡言漢語笑盈욍
서로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함을 이해한다면 相逢若解不相識
미륵보살의 누각문도 활짝 열어지리라! 樓閣門庭八字開
― 괴납련 선사, 〈화입전수수〉
《십우도》의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는 보살이 중생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노래이다. 즉 보살송(菩薩頌)이다. 깨달음을 얻었으나 사람들이 알아 보지 못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천 명의 성인도 알 수 없다(千聖不知).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흙투성이 얼굴을 하고 저자거리로 나왔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통하고, 아름답고 기적같은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보살행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마른 나무에 꽃을 피게 하는 기적이다(直敎枯木放花開).
석고이 선사는 임제 선사의 “쇠몽둥이(鐵棒)를 휘둘러서 이 세상의 모든 문을 두들겨 연다(一揮鐵棒如風疾萬戶千門盡擊開)”라고 읊었다.괴납련 선사는 “미륵보살의 누각문도 활짝 열어지리라![樓閣門庭八字開]”고 읊었다. 미륵보살의 누각문은 《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 뵙고 마지막 다다른 문이다. 미륵보살이 손가락 한 번 튕길 때 모든 문들이 안에서 열렸다.
‘래(來)’ ‘시(욍)’ ‘개(開)’의 압운이 모두 정확하게 된 화운시(和韻時)이다. 《십우도》에 나오는 30수의 시가 모두 정확하게 운(韻)을 맞취서 소를 찾아가는 수행과정을 노래로 읊은 것이다.〈무산 심우도〉의 마지막 〈입전수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생선 비린내가 좋아
견대(肩帶) 차고 나온 저자
장가 들어 본처(本妻)는 버리고
소실(小室)을 얻어 살아볼까.
나막신 그 나막신 하나
남 주고도 부자라네.
일금 삼백원에 마누라를 팔아 먹고
일금 삼백원에 두 눈까지 빼 팔고
해 돋는 보리밭머리 밥 얻으러 가는 문둥이여, 진문둥이여.
― 조오현, 〈무산 십우도〉, 〈입전수수〉
무산의 〈입전수수〉는 철저한 보살행을 노래한 보살송(菩薩頌)이다.1연의 초장 “생선 비린내가 좋아 견대 차고 나온 저자”는 보살은 중생이 모여 사는 시장 저잣거리가 좋다. 독각불은 고요하고 한적한 난야(蘭若)를 좋아하지만, 보살은 시장의 생선 비린내가 좋고, 전철 속의 땀냄새가 좋다. 확암 선사의 《십우도》에서는 그림으로 포대 화상이 중생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을 가득 담은 포대를 걸치고 육중한 몸매로 여유있게 나타나는데, 무산은 장사꾼이 어깨에 걸치는 작은 돈가방인 견대(肩帶)로 바꾸어 표현했다.
중장 “장가들어 본처는 버리고 소실을 얻어 살아볼까”는 인간사 일 중에 가장 세속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가난한 사람이 장가들어 부자되면 못생긴 조강지처를 버리고 젊고 예쁜 계집을 소실로 얻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보통 사람들이 백일몽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탐욕스럽고 앙큼한 망상이다. 인간 세상의 모습을 읊은 것이다.
종장 “나막신 그 나막신 하나 남 주고도 부자라네”는 보살행을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 발바닥에 붙은 나막신마저 가난한 이웃에게 보시해 버리는 사람은 마음이 큰 부자이다. 모든 인간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큰 사람이다. 마하보살이다. 거추장스럽게 발바닥에 붙은 집착을 떼버린 도인이다.
2연은 더욱 파격적인 표현이고, 역설적이다. 초장 “일금 삼백원에 마누라를 팔아먹고”는 인간의 집착 가운데 가장 큰 집착이 마누라에 대한 집착인데, 이런 경지는 완전히 세상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버린 것이다. 이것은 파계가 아니다. 석가모니의 《전생담》에 보면 그가 보살로서 인행을 닦으실 때 자기의 자식과 부인까지 모두 보시하는 한없는 무주상(無住相) 보시행이 나온다.
중장 “일금 삼백원에 두 눈까지 빼 팔고” 역시 분별과 차별심을 모두 끊고 중생과 하나가 되는 공(空)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보고 분별심과 차별심을 일으킨다. 그러니 두 눈을 빼버리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된다. 이것이 보살의 공관(空觀)이다. 선사는 분별과 차별심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한 눈으로 본다. 이것이 일척안(一隻眼)이다. 《전생담》에 보면 석가모니께서 전생에 비둘기를 구하기 위해서 당신의 살점을 잘라 비둘기 고기를 대신하고, 나중에는 두 눈까지 빼서 보시하는 내용이 나온다.
무산의 이런 시상은 그의 철저한 수행과 그리고 처절한 만행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표현이다. 그의 시는 오싹오싹할 정도로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나 그의 본심은 경허 선사에게서 배운 철저한 보살행이 깃든 구도심이다. 그의 구도는 마치 생사를 결판짓는 비장함이 있다.
두번째 〈견적(見跡)〉에서 “그 무슨 인감도 없이 하늘까지 팔고 갔나”, 일곱번째 〈망우존인(忘牛存人)〉에서 “이·저승 다 팔아먹고 새김질하는 나날이어.”라고 읊듯이 그는 도둑놈이 되어 모든 것을 다 팔아먹었다. 하늘도 땅도 이승도 저승도, 마누라도, 자신의 눈깔까지도 모두 팔아먹고 또 그것을 초월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모든 사물(대상)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났다. 대단한 보살의 자비심과 무주심(無住心)을 노래한 선시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종장 “일금 삼백원에 마누라를 팔아먹고/일금 삼백원에 두 눈까지 빼 팔고/해돋는 보리밭머리 밥 얻으러 가는 문둥이”는 우리가 말하는 나병환자 문둥이가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아상(我相)의 이목구비가 문드러지고 손발톱이 물러빠진, 그래서 나(我)라는 생각도 중생을 구제한다는 생각도 없이 이타행(利他行)을 하는 일개거화인(一箇擧話人)을 말한다. 철저한 ‘입전수수’를 노래한 경계다. 선기시(禪機詩)다.
선시는 자신이 온몸을 불태워 추구했던 절대적 세계인 오경(悟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목표이다. 깨달음의 세계는 의식으로 분별, 인식되는 문자 이전의 무의식(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 세계이기 때문에 보통 일상적인 언어로서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고도의 상징과 역설, 모순된 어법, 즉 반상(反常)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선가에서만 사용하는 약속된 선가언어이다. 이런 선가 언어가 현대시의 시어와 자연스럽게 만나고 있다. 다시 말해 선사상과 현대시가 만나고 있다.
20C의 서구철학은 이성주의·합리주의에 염증을 내고 반이성주의 철학이 나타났다. 사회의 문제와 인간의 삶의 문제, 예술의 세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인간의 이성만 가지고는 해석하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선시는 자신의 깨달음의 경지를 언어 문자를 통해 발가벗고 세상 사람에게 내보이기 때문에 시를 짓는 시도 자체가 쉽지 않다. 우선 선적인 수행과 시작(詩作) 표현 능력은 그만두고라도 대단한 용기와 배짱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근배(李根培) 시인은 조오현의 《심우도(尋牛圖)》 시집의 해설(1978, 한국문학사)에서 “조오현은 하나의 경이(驚異)다. 1970년대의 한국 시가 조오현과 만나게 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고 평론하였다.15) 또 〈화두를 쏟아내는 설악산 안개 조오현 선사의 불립문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무산의 《심우도》에 대하여 평가하고 있다.16)
“신시조 이후 정인보, 이병기, 이은상, 조운, 이호우, 김상옥 등에 의해 시조가 현대시로서의 자리매김을 해왔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물줄기의 새로운 길을 내는 작업들이 있어 왔지만 눈을 탁 틔우는 소리 하나를 만나기는 어려웠다. 내 눈과 귀가 어두웠던 탓도 있겠으나 무산 스님이 《심우도》의 시고들을 내게 보였을 때, 아하! 이것이구나, 소를 찾는 그림(尋牛圖)은 바로 우리의 정신세계의 한 축인 원음(圓音)의 소리를 찾는 것이구나, 하고 머리를 치는 빛을 느낀 것이다.”
또한 《현대시학》 시조총평 좌담17)에서 원로 시조시인 장순하는 “조오현의 시는 힘이 충천합니다. 어떤 소재를 그에게 맡겨도 넉넉히 그리고 힘차게 획(劃)을 긋고 점(點)을 찍을 줄 아는 시인이 조오현이 아닌가 싶더군요. 작가의 개성이 뚜렷함을 증명함과 동시에 그 발휘를 잘하고 있다는 것이 되겠지요.”라고 했고, 서벌 시인은 “집요한 추적 정신, 즉 선세계의 한 요소인 자아의 대상을 향한 싸움에서 얻은 시작이자 전환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에
시조가 자기 정신을 가지고, 자기 표현을 얻고 자기 몸놀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한다면 조오현과 같은 사람이 시류에 물들지 않고 시작(詩作)에 임하게 됨으로써사 아닌가 생각됩니다.”라고 두 시인이 무산의 시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박재두 시인 또한 “조오현의 시조를 읽으면 우선 우리가 통념적(通念的)으로 받아들였던 불가(佛家)의 생각을 깨뜨려 주고 있습니다. 불가에서의 선세계는 우리와 상당히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조오현의 시를 읽으면 그렇지 않고 바로 온다는 것입니다. 전류(電流)라 할지 전율(戰慄)이라 할지, 그것이 바로 온다는 것입니다. 막대를 가지고 정수리를 내리치는 듯한 앗찔함을 보여줍니다.”라고 역시 시정신 내지 처절한 구도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무산의 선시는 〈심우도〉 10수와 〈달마의 십면목〉 10수, 〈일색과후(一色過後)〉 5수, 〈해제초(解制秒)〉 3수, 〈무자화(無字話)〉, 〈일색변(一色邊)〉, 〈만인고칙(萬人古則)〉 등이 있다. 모두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읊은 연작시로 한국 선시 가운데서 수준 높은 최고봉이다.
일색(一色)은 선 수행을 통해 깨달은 후에 얻어지는 인식의 경계이다. 현상세계의 차별과 분별이 모두 없어지는 사해일색(四海一色)의 경계이다. 《장자》에서 대붕(大鵬)이 구만리 장천 하늘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면 잘난 놈 못난 놈, 키가 큰 놈, 작음 놈이 똑같이 보이고, 색깔도 빨강·노랑·초록이 모두 없어지고 하나의 색깔(一色)로 보인다는 경계이다.
일색(一色)은 중국 당나라 말기 상찰(常察, ?∼961) 선사가 지은 《십현담(十玄談)》 가운데 하나이다. 십현(十玄)은 ①심인(心印), ②조의(祖意), ③현기(玄機), ④진이(塵異), ⑤연교(演敎), ⑥환향곡(還鄕曲), ⑦파환향곡(破還鄕曲), ⑧전위(轉位), ⑨회기(廻機), ⑩일색과후(一色過後)이다.
십현시(十玄詩)는 칠언율시 형식으로 선의 최고 경지를 읊은 선시의 최고봉이다. 확암의 《십우도》와 십우도송의 내용을 살펴보면 마음을 찾는 수행과정이 상찰 선사의 《십현담》과 십현시(十玄詩)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중국의 법안문익(法眼文益)이 주(註)를 붙였고, 조선의 김시습(金時習)이 백담사 오세암(五歲庵)에서 《십현담주해》를 지었고, 만해도 그곳에서 《십현담주해》를 지었다. 서문에 의하면 《십현담》은 불조(佛祖)의 현관(玄關)이어서 뛰어난 대장부가 아니면 그 관문 속을 엿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무산은 김시습, 만해의 뒤를 이어 백담사에서 〈일색과후(一色過後)〉 5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