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보내는 종소리
  
  來自鳳城明月路(래자봉성명월로)
登臨方丈白雲峰(등림방장백운봉)
詩香碧체花千片(시향벽체화천편)
語冷疎林竹萬叢(어랭소림죽만총)
紅影日飜秋樹岸(홍영일번추수안)
寒聲風送夕陽鐘(한성풍송석양종)
重逢又得瓊거句(중봉우득경거구)
却愧山僧和未工(각괴산승화미공) 

봉성의 달 밝은 길로 와서
산사의 흰 구름 봉우리에 올랐네
푸른 섬돌 일천 꽃잎에 시는 향기롭고
일만 그루 성근 대숲처럼 말씀 서늘해
붉은 그림자는 가을나무 언덕에 번득이는 햇살
바람에 나부끼는 저녁 종소리의 차가운 울림
다시 만나자 또 얻게 되는 구슬 글귀에
산승의 공교롭지 못한 화답이 부끄럽소. 

상월대사의 시이다. 지방관리인 봉성의 책방 김공에게 주는(呈鳳城冊室金公) 시이다. 방외의 사귐에서 주고 받는 시이다. 두 사람의 우정을 이야기하되, 다만 자연사물만 이야기하여 간접적으로 우정을 짐작케 하고 있다. 떠나온 곳은 봉성이라는 저자 거리이다. 그런데 그 길을 밝은 달 거리 명월로라 하였으니 상대방의 거처에 대해 미화하고 있다. 이 명월의 거리에서 백운봉을 찾았으니 그야말로 궁합이 맞았다. 명월과 백운은 항시 같은 공간에서 화합하는 것이다. 

만나서 주고 받는 시는 향기롭다. 왜 향기로울까. 파란 이끼의 섬돌에 진홍의 일천 꽃잎이 수놓고 있다. 이것이 모두 시의 소재들이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시가 향기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주고받는 말씨는 어떠한가. 빈틈없는 논리가 싸늘하리만큼 느껴진다. 온갖 대숲의 풍미가 깃든다. 시의 수사에도 묘미를 더하면서 상대방의 문학이나 인품도 적절하게 비유하고 있다. 

해에 번득이는 가을 단풍의 진홍빛이 바로 산의 그림자이다. 굳이 이 산의 절경을 언덕(岸)으로 대표하였다. 역시 시인의 사물 인식의 독특함이다. 햇살과 단풍의 조화는 지는 해를 사선의 대칭으로 맞서는 언덕이라야 제 빛을 낸다. 거기에 바람소리 따라 울리는 저녁 노을의 종소리이다. 두 사람이 함께하고 있는 주변의 경관이지만 시의는 경관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아름다움이 상대방의 그림자(影響)요, 소리(色聲)이다. 이것은 자연물로 사람의 품성을 유추하되 드러내지 않는 미화의 수법으로, 바로 대사의 시가 자연물을 맞아들이는(迎入) 높은 수법이라 하고 싶다.
 
 이종찬 <동국대 교수>
자료출처:(http://bud.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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