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뒤에조화 이루다
  
  雨過東山後(우과동산후)
慇懃造化成(은근조화성)
暗紅桃杏間(암홍도행간)
軟綠梧柳呈(연록오류정)
村酒香而록(촌주향이록)
春琴蕩忽淸(춘금탕홀청)
澗崖吟久坐(간애음구좌)
物色少留情(물색소류정) 

비 지난 동산의 뒤에는
은근히 조화 이루어지다
은은한 붉은 복숭아 살구나무 사이
연한 푸르름은 오동 버들이 드린다
마을 술은 향기로우며 해맑고
몸날 거문고는 호탕하다 맑아져
시내 바위 오래 앉아 읊조리니
모든 물색이 잠시 정을 멈춰주네. 

월하(月荷 1773~1849)대사의 봄비(春雨)라는 시이다. 봄비가 내린 후의 대자연의 변화를 서술한 시이다. 여기에는 종교적 교의성은 조금도 없다. 스님으로서 세속적 진리를 담담히 읊은 것이다. 

만물의 소생으로서의 봄날의 계절은 유독 자연조화의 총체적 발로로 이해되어 더더욱 감동적이다. 둘째 구의 ‘은근’이라는 한 단어가 어쩌면 소리 없이 준동하는 자연사물의 신비를 간직한 묘수인 것 같다. 그것이 바로 비가 지나간 봄 산의 실상이다. 비에 윤기를 얻은 만물의 생태이다. 

이러한 조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두드러진 변화가 바로 색깔로 드러나는 것이다. 형형색색의 모형과 빛깔의 갈래가 모든 사물의 생태를 갈라놓고 있다 할 것이다. 은은한 붉음이 봄꽃을 대표하는 색깔일 수도 있다. 살구꽃은 나무꽃으로서의 첫 장식을 펴는 것일 수가 있다. 깊어가는 봄의 전령사 노릇을 한다 할 것이다. 이 담홍의 빛을 살구와 복숭아의 ‘사이’라 하였다. 피는 시기의 간격을 말할 수도 있고, 붉음과 흰색의 사이일 수 있으니, 이 역시 단어 하나의 묘미이다. 거기에 맞물리는 연록의 버들이다. 

봄의 운치에 시주(詩酒)가 빠질 수 없으니, 익어가는 촌 술과 탕정까지라도 불러올 거문고의 등장이다. 술은 향기로우면서 해맑고 거문고는 호탕하다가 맑다라는 이 상반될 듯한 시어들의 조화가 역시 스님으로서의 시인인 성이범(聖而凡)이요 범이성(凡而聖)적 작시의 고수라 하고 싶다. 어찌되었건 바위서리의 음시에서 잠시 빼앗기는 정은 우리네의 속정이 아닌 초탈자의 참 정이 분명하다.
 
 이종찬 <동국대 교수>
자료출처:(http://bud.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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