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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밝은 마음으로 한발짝 다가서는 좋은인연에 복을 주십니다.
작성자 道窓스님
작성일 2008-03-18 (화) 14:29
홈페이지 http://dochang.kr
ㆍ추천: 0  ㆍ조회: 1547      
진철 스님
道窓 *자비지혜의샘터 ♡도창스님 인터넷 모임♡입니다. 가없으신 부처님의 가피얻으시고 날마다.한량없는 환희심으로 좋은 날들 되십시요.* 스님
오래전 자료이기에 약력이나 주석하시는 사찰이 현재 상황과 다를수 있습니다.
★ 【수행한담】 ★

진철 스님 (만불선원회주)
  
  “자기를 바꿔라 좋은 쪽으로…”
먼 곳을 향해 있는 시선은 전체를 본다. 그래서 어느 곳으로 길이 나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목적지에 잘 다다를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바로 앞의 것에만 고정돼 있던 눈을 들어 더 먼 곳으로 눈길을 줄 때, 발 딛고 선 현재에 먼 미래를 향해 나아갈 좌표가 비로소 생긴다. 지금 갈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상황일수록 그렇게 먼 곳에 시선을 두고 현재를 걸어가는 길잡이가 그리운 법이다. 충남도청에 인접해 있는 만불선원을 찾아가는 길, 스님은 초행길인 기자를 위해 도청까지 걸어 나와 길을 안내했다. 고생하지 않게 더 쉬운 길을 찾게 하려는 스님의 마음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더 쉽게, 더 분명하게 길을 열어 보이는 일이 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믿으며, 또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온 스님과 보낸 시간 속에서 나의 길을 멀리 응시해 보게 되었다.
대전시 중구에 위치한 만불선원 회주 진철 스님의 눈길은 늘 먼 곳을 향해 있다. 스님의 ‘멀리 보기’와 ‘전체 관망하기’는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명백하게 해준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삶의 철학이다.
“불교가 궁극적으로 가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 방향 설정부터 제대로 돼야 합니다. 불교의 기본 목적은 중생구제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의 실정은 큰스님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법문을 하고 그것으로 법을 다 전했다고 하고, 또 그런 것에만 사람이 몰려드는 쏠림현상까지 있어요. 그 결과가 뭡니까? 일반인들이 불교를 멀고 어렵게 느끼게 만들고 결국 사회적 기여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쉽게 말해서 중생구제가 안 된다는 결론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하면 중생구제가 될 것인가 방향 설정을 하고 그것에 의한 법문도 하고, 불사도 포교도 해야 합니다. 그런 방향 설정 없이는 우왕좌왕 할 뿐입니다. 아무리 교세가 확장되었다고 떠들어도 소용이 없어요.”
스님은 오래전부터 불교의 대사회적 역할 찾기를 화두처럼 여겨왔다. 사회의 이런 저런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오면서 스님은 불교의 위상이 아직도 ‘깜깜절벽’이라는 걸 절감한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스님들이 사회적인 역할을 해봐야 불교가 사회적으로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또 현재 불교를 인식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어떤지를 알 수가 있어요. 그런데 절 안에만 머물러 있으니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연구와 고민, 관심이 부족해요. 불교가 이 시대의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주느냐 하는 것이 불교의 역할입니다. 지난 20세기에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기독교 문화 일색으로 흘려보냈으니 이제 21세기는 불교의 시대로 만들기 위한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21세기의 대안을 불교라고 하면서도 그런 연구와 고민은 아직 걸음마도 못 떼고 있어요. 그러니 사회 속에서 불교의 메아리가 없는 공염불만 되풀이 되는 겁니다.”
최근 스님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국민신탁 법인 창립 준비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불교의 대사회적 역할이 시급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문화유산 대부분이 불교 문화재임에도 실질적으로 그 분야에서 활동할 전문가를 키워놓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절감했다. 인재 양성의 중요성은 현장에 나가보면 곧바로 와 닿는다. 실핏줄조차 없이 대동맥, 대정맥을 움직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고 이끌어갈 수 있도록 종책 연구나 승려 교육이 일목요연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대전 도심에 포교원을 연지 1년 6개월 남짓. “도심에 포교원을 열고 신도를 교육시키고 포교하는 것은 불교가 해야 하는 기본”이라고 강조하는 스님의 말에서 스님의 포교관을 짐작할 수 있다. 수행으로 스스로의 깨우침을 이끌어주고 그 바탕위에 대사회적인 역할이 분명하게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의 포교 원력은 도심포교당인 만불선원을 열기 훨씬 이전부터 뿌리 내리고 있다. 앞선 스님의 생각은 처음엔 생소하게 보여 거부당하기도 하고, 시작은 되었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 것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스님의 생각들이 하나 둘 현실 속에서 불교가 해야 할 역할들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들이 많다.
숙세의 인연이 있었던지 불교가 너무 좋아 출가의 길을 선택한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을 세상 속에 펴는 길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세수 서른 살도 안 되었던 1960년대 후반, 이미 불교종합병원 건립을 시도했다. 그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그 일을 진행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결국 1150평 골조를 세우고 그 일은 중단됐다. 앞선 생각은 있었으나 사회적인 여건이나 분위기가 성숙되지 못한 상황에서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앞선 생각과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스님의 앞선 생각과 시도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잡은 복지, 환경, 문화 분야의 첫 출발을 열어준 단체의 책임을 맡았던 직함들이 제법 포함돼 있다. 1983년 스님으로는 최초로 사회복지법인 강릉자비복지원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지냈는데 그 일은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때는 매스컴이 온통 난리였어. 스님이 사회복지법인을 만든 게 뉴스가 되고 유명 잡지, 방송프로그램 등에서 인터뷰를 하고 했으니 그만큼 불교나 스님이 사회적인 역할을 안 하고 있었다는 게 되겠지. 아무튼 그때 스타가 됐지. 허허허.”
그 뿐 아니었다. 불교환경교육원 초대 이사장과 생명나눔실천운동본부의 모태가 된 생명공양실천본부를 설립하고 본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의 하나는 마곡사에 마곡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지낸 일이다. 1971년, 종합병원 건립에 실패하고 난 뒤 곧바로 스님은 8km를 걸어가야 중학교를 갈 수 있는 마곡사 인근 마을의 현실을 직시하고 중학교 과정의 학교 개설을 추진했다.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라 중학교를 못가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땅을 매입하고 100평 규모의 건물에 교사 4칸을 지어 중학교 과정을 열어 13년간 운영했다. 그 과정을 마치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는데 시험합격률이 상당히 높았다. 그 학교를 거쳐 간 제자들이 지금까지도 연락해오기도 하고 출가한 이들도 있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인재들로 자라났다. 스님의 이 같은 노력을 지켜보던 정부에서 정식 중학교 과정을 개설하면서 마곡고등공민학교를 폐교했지만 스님의 앞선 생각은 배움의 길이 막힌 수많은 이들의 미래까지 열어 준 것이다.
세수 68세. 이제는 인생 회향을 준비 중이라는 스님에게서 불교의 기본을 배운다. 어찌 하면 부처님 가르침을 내 삶속에서 실현하고, 또 그것을 모르는 일반인들과 나눌 것인가를 고민하게도 된다.
“불교는 결국 자기를 바꾸는 것입니다. 성불은 곧 나를 바꾸는 것이고 좋은 쪽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무엇을 구하고 빌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기를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몇 번이나 죽었다 살았다하는 호된 훈련을 거쳐야 챔피언이 되듯이 나를 비워내고 부처님으로 나아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님은 육바라밀 실천 속에 불교의 전부가 들어있다고 강조했다. 육바라밀의 가장 첫 덕목이 보시인 것은 보시하는 마음과 행동이 나오려면 나를 포기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 포기는 곧 자기 변화를 가져오고 그것 이상의 공부가 없다는 것이다. “너무 어렵고 수준 높은 것에 욕심내지 말고 기본을 챙겨가라”는 스님의 말씀이 돌아오는 길, 오래 오래 곱씹어졌다.
글·사진=천미희 기자

진철 스님은 1964년 공주 마곡사에서 일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도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고 1979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법사로 건당했다.
입산 이전부터 새벽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스님의 일과는 출가 후에도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시작된다. 알람이 없어도 한 번도 실수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스님의 일과는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다.
좌복 위에 앉아 있어야 수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스스로의 공부를 점검하기 위해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법주사 등에서 안거를 이어왔으며 2001년부터 3년간 대전 두산서원 토굴에서 정진하기도 했다.
회향과 함께 다음 생을 준비하며 산다는 스님은 인연이 닿으면 재가자를 위한 연수원을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대전에 터를 잡은 것도 전국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에 연수교육원을 세울 수 있게 되길 발원하는 마음에서다. 승가는 재가에게 재가는 승가에게 서로 서로 스승이 돼야 목적지에 제대로 가닿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스님의 오랜 원력이 인연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부다피아/편집:(http://dochang.pe.kr)
오래전 자료이기에 현재 상황과 다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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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아이콘 연지심
    2008-05-15 09:29
     _()_()_()_
       
    이름아이콘 德山
    2008-05-16 01:58
     _()_
       
    이름아이콘 감로행
    2008-06-30 16:02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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