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스님 (도리천 한주) ‘비교’하지 않으면 편안해집니다 구불구불 이어진 비포장 산길을 따라 차로 삼십여 분은 족히 달렸다. 경북 봉화군 계곡을 따라 난 좁은 산길엔 돌멩이들이 굴러 내려와 있고 길은 막 시작된 장맛비에 촉촉해져 있었다. 비가 조금만 더 와도 계곡에 놓인 낮은 다리가 잠겨 속절없이 갇힐 것만 같았다. 산안개가 때론 길을 숨겼고 ‘정말 이 길이 맞는지’ 몇 차례 의심을 일으키며 나아가야 했다. 결국 근처 공사 현장에서 만난 인부에게 길을 물었다. 그 젊은 청년이 답했다. “이 위로는 아무것도 없는데요.” 답을 듣고 차를 돌렸다. 휴대전화가 터지는 지점까지 다시 한참을 내려와 스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아뿔사 그 청년이 잘못 알고 있는 거란다. 공사 중인 그 지점에서 500m만 더 올라오면 된다는 것이 아닌가? 산길을 가는 동안, 아는 것은 쉽다는 말을 절감했다. 세상사도, 불법도 제대로 알면 쉬울 것이다. 그런데 모르니까 복잡하고 멀고 어렵기만 한 것 같다. 기후 스님은 15년간의 호주 시드니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 축서사에 머물다 지난해 가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깊기로 소문난 구마동 계곡의 토굴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호롱 등잔이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휴대전화는 터지지도 않고 유선전화가 있기는 하지만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불통이 되거나 엉뚱한 곳으로 연결되곤 한다. 그곳에서 기후 스님은 2~3일에 한번 군불을 지펴 밤의 냉기를 녹인다. 시드니 정법사로 떠나기 전 계곡 초입의 초가에서 1년을 보낸 적이 있는 스님은 이 계곡을 아주 좋아했다. 언젠가 다시 들어와 살겠다는 스님의 한 생각이 스님을 이곳으로 다시 발걸음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토굴 입구쯤 나뭇가지에 <기후 은사(隱舍) 도리천>이라고 붙여 놓은 팻말이 눈길을 끈다. 숨을 은(隱)자의 뜻이 절로 이해되는 위치에 있다. 스님에겐 세 가지 화두가 있다는 것을 글로 읽은 적이 있어 그 질문부터 꺼냈다. 첫 번째 화두, ‘나는 왜 천연두를 앓게 되었을까?’ 그리고 두 번째 화두 ‘어떤 인연으로 승려가 되었을까?’ 한살 때였다. 기후 스님이 천연두를 앓은 것은. 그때 얼굴에 심한 흉터가 생겼다.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다. 그때부터 흉진 얼굴은 기후 스님이 극복해야 하는 상처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놀림을 많이 받았지만 어려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다가, 오히려 고등학교 때 고민을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고민으로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했지요. 불교를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도 인연이 있었던지 고민의 끝이 출가였어요.” 왜 하필 출가였을까를 물으면 뚜렷한 답은 없다. 다만 중학교 2학년 때 승복을 입고 향내음을 풍기며 지나가는 스님을 본 이후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 봤으면’하고 마음을 냈던 기억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얼굴로는 결혼하기도 힘들 것인데 스님은 결혼도 안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절에 가면 나의 허물을 보듬어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전부였다. 안동농고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때 하루 밤을 잔 적이 있는 봉정사를 찾았다. 그곳에서 젊은 사람이 공부하려면 범어사나 통도사 같은 큰 절을 가야 한다는 얘기만을 듣고 수학여행 간 적이 있는 범어사를 찾아갔다. 범어사 어산교에서 저녁 예불 소리를 들으며 무언가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하필 그 당시 범어사 금강암에 대처승이 주지로 있었어요. 3년 동안 행자 생활을 하고 계를 받을 때가 되었는데 대처승절에서는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는 수계 준비 다해놓고 도망을 쳤어요. 다시 통도사로 와서 그곳에서 사미계를 받았지요.” 기후 스님에게 출가는 위안을 찾아 떠난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러나 입산해서도 진정한 위로를 얻지 못했다. “출가 전에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이해하면 나를 진정으로 위로해줄 말씀이 있지 않겠나 생각했지요. 그러나 절에서도 못생긴 사람이나 힘없는 사람에 대한 홀대는 여전한 것 같았죠. 결국 모든 허물을 감싸 줄 것이라는 기대가 빗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공부를 잘못한 것이죠.” 통도사 승가대학에서 강사를 하기도 했지만 교리에 한계를 느꼈다. 봉암사를 비롯한 선원에서 결제를 시작한 계기였다. 차별의 세계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 선원에서 나름의 공부힘을 얻었다. 그러나 한철 잘 지내고 해제 때는 여전하고 내면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6년 묵언정진이었다. 도반 세 명과 함께 경주 기림사 북암에 들어가 6년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묵언에 들어갔다. 쉽지 않았다. 처음 3년은 지금까지 살면서 잠재돼 있던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많이 남아 있어 끊임없이 생각이 올라와 괴롭혔다. 그러나 3년 이후에는 안보고 안 들으면서 정진하다 보니 내면으로 힘이 쌓였다. “묵언 하며 비교하는 마음이 해결되면서 나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졌지요. 내 스스로 파놓은 수렁, 얼굴에 대한 부족감, 불만족, 또 교리 공부를 깊이 하고 싶은데 따라주지 않는 체력 등 복합적인 내 약점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한군데서 나오지 않고 모든 반연을 쉬면서 내면의 힘이 길러지니 자신감이 생기면서 편안해 졌지요.” 그러나 스님은 6년 동안의 묵언을 ‘실패’라고 회고했다. 필담을 나누었던 것이 공부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다는 자평이다. 필담이 갑갑한 것을 해소시키긴 했지만 자기과시의 방편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 와서 물어주기를 은근히 기다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6년 묵언 정진 회향후 더 깊은 곳을 찾아 들어온 곳이 구마동 계곡의 초가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깊은 곳을 물어 들어온 그곳의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준비 없이 골짜기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시작한 토굴생활은 도반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고 너무 추웠다. 해제 때 대만에 들렀다 시드니로 가게 됐다. ‘신도들이 별나다’, ‘스님들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6년 묵언 정진뒤라 자신감이 없지 않았다. “묵언 정진으로 내면의 고요를 얻었다고 착각하고 있던 시절이라 은근히 경계가 나타나길 바랐어요. 경계가 오면 정진력으로 해결하리라 했던 거죠. 그런데 시드니에 가서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니 정진력이 약했고 분수 밖의 불사에 대한 욕구 등 복합적으로 몸이 견디지 못하고 말았어요. 시드니 15년 생활을 돌아보면 내 힘대로 후회 없이 살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결국 병이 나고 말았지요.” 이렇게 스님의 세 번째 화두가 등장한다. ‘내가 어쩌다 위암에 걸렸을까’ “마음 경영을 잘못해서 그렇겠지요. 지금도 한국을 찾아온 신도들은 우리들이 애를 먹여서 내가 병이 났다고 죄송하다고 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설사 신도들이 애를 먹였다 해도 수행력으로 잘 받아들이고 풀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봐요.” 기후 스님과 말하고 있으면 모든 게 ‘공부가 부족하다’로 귀결된다. 바깥을 향하지 않고, 내세우지 않는 마음 때문에 절로 편안해진다. 축서사 홈피에 ‘별빛방장’이라는 코너를 통해 풀어내는 스님의 이야기는 스님의 진면목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평생을 수행자로 보냈으면서도 신도들에게 권할 뚜렷한 수행법조차 갖지 못했다며 공부가 부족하다고 슬쩍 미소 짓는 스님. 늘 스스로의 부족함만을 돌이키는 스님의 겸손과 내면을 향하는 힘이 구마동계곡 보다 깊어 보인다. 한때 스님을 괴롭히는 상처였던 마마자국은 이제 스님의 얼굴에 핀 꽃 같다. 스님이 미소를 지으면 그 꽃들이 환하게 피어난다. 참 아름답다. 스님의 미소는. “공덕을 짓는다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좋은 생각을 하고 보시를 베푸는 것이 모든 일을 하는 근원이 됩니다. 해 놓은 것도 없으면서 많은 것을 바라서는 안됩니다. 생활 속에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부처님 말씀과 선각자들의 좋은 말씀을 조합해서 반추해보세요. 그러면 대체적인 잘잘못이 드러날 겁니다. 이 길만이 최고다 하고 큰소리도 치지 말고, 그때그때 자신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서 살아가야죠.” 글·사진=천미희(본지객원기자) 기후 스님은 1943년 안동에서 태어났다. 범어사, 통도사 5년의 행자생활 끝에 1969년 사미계를 받고 통도사 승가대학, 해인사 승가대학 등에서 강사를 역임했다. 어린 시절 9000 영단어 외우기를 하고, 영어로 고민을 종이에 써놓았을 정도로 영어실력이 대단했던 스님은 1991년 호주 시드니에 정법사라는 절을 창건, 그곳에서 15년간을 지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축서사와 인연이 닿아 홈페이지 ‘별빛방장’ 코너를 맡아 수행과 삶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며, 봉화읍내에 위치한 축서사불교교양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출처:부다피아/편집:(http://dochang.pe.kr)
오래전 자료이기에 현재 상황과 다를수 있습니다.

연인사도창스님의인터넷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