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과 스님 (통도사 선덕) “잠자는 시간 쪼개서라도 공부해야” 솔숲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오솔길은 계곡을 끼고 있어 눈과 귀를 시원하게 해주었다. 한참 걷다보니 ‘다비장 가는 길’이라는 팻말이 보이고, 줄지어 있는 부도탑을 만났다. 향과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그윽한 향기로 스님을 먼저 뵌 기분이었다. 향과 스님은 신심 깊은 불교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유복했는데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아버지의 병고로 집안이 어려워졌다. 이런저런 연유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절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니 동진출가한 셈이다. 출가한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하였던 것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강원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그래서 강원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교육학을 공부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니 모든 것이 헛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공부란 생사해탈 공부밖에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간접적인 공부는 되었겠지만, 생사해탈을 위한 직접적인 공부는 아니란 것이 스님의 말씀이다. “생사해탈이란 곧 육도윤회를 벗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혜롭지 못한 생각은 모두 번뇌망상입니다. 지혜로운 생각만이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 번뇌망상이 끊임없이 일어나잖아요. 이것을 잠재우는 것이 생사해탈입니다. 이렇게 번뇌망상을 잠재우고 끊어나가다 보면 궁극에 가서는 죽음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무상관을 지금 여기에서 깨닫는다면 이것이 바로 생사해탈이지 뭡니까? 그런데 당장 할일도 하지 않고 생사해탈만을 목표로 삼는다면 그것도 번뇌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왜 현재 생활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요?” 향과 스님이 생각하는 생사해탈관은 이러하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참선하기를 권한다. 참선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10년 20년 지나고 나면 스스로가 변화된 자신을 느낄 수 있단다. “2, 30대는 돈, 명예, 사랑으로 인해 바쁘게 지나가지만 40, 50대가 되면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젊을 때와는 생활이 달라집니다. 우리 인생은 한때는 궁극적으로 필요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필요없을 때가 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40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참선의 맛을 들여놓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선정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으며, 제자들에게 선정을 강조하였다. 향과 스님 또한 그 선정의 맛을 보았기에 참선하기를 적극 권하는 것이다. 선정에 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스님께 여쭈었다. “첫째는 화를 잘 내는 마음이나 다투는 마음이 없어야 참선 수행이 됩니다. 둘째는 게으름의 때가 끼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어요. 그 다음으로는 마음을 헛되이 쓰지 않고 부처님 같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마음 앞에서는 모든 불행도 피해갑니다. 넷째는 믿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후회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다섯 가지 마음이 사라질 때 첫 관문을 통과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 단계에 이르러야 겨우 진리를 어렴풋이나마 볼 수가 있어요. 구태여 깊은 산중이나 선방이 아니더라도 집이나 직장에서 또 버스나 전철 속에서도 얼마든지 선정의 습관을 길러나갈 수 있습니다.” 많은 선지식도 있고 많은 스승이 있지만 향과 스님에게 있어서는 부처님이 최고의 스승이며, 삶의 모델이다. “진주 연화사 주지를 6년 정도 하고 나서 법당을 중창했어요. 어느 날 법당공사를 하면서 부처님은 35세에 자기완성을 했는데,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내 나이가 36살 이었어요. 7개월 만에 법당 공사를 마무리 짓고 나서 미련 없이 연화사를 떠나왔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생애를 닮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인생이 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리 길지 않아요. 우리는 이 몸뚱어리를 가지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꾸미고 치장하고 입히고 좋은 것만 먹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간에 다음에 잘하면 되고, 다음에 사과하면 된다고 행동과 말을 함부로 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공부할 시간도 많지 않습니다.” 향과 스님은 시적(施寂)불교를 주창하고 있다. 시적불교의 정신은 수행과 교육과 포교이다. 향과 스님은 1973년 진주 포교당 연화사 주지직에 부임하면서 시적불교를 만들었다. 노령화 되어 있는 불교를 젊은 불교로 바꾸기 위해 중고등학교 불교학생회를 육성하였는가 하면 새싹불자가 자라나도록 연화유치원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그 시절에 음력법회를 대신하여 일요법회로 전환하였다. 스님은 결제철이 되면 선원에서 안거를 하였고, 해제철에는 전법을 통하여 수행을 하였다. 그리고 법연의 기회를 넓히고자 스님은 출장법회를 시도하였다. 향과 스님은 불교를 완전히 개방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신도들이 자치적으로 사찰운영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목탁 치는 것부터 해서 사찰의 살림살이를 신도들에게 넘겨주었다. 이것 또한 부처님의 겸허함과 평등정신을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닌가 싶다. 부처님이 평생을 대중과 함께 하였듯이, 대중과 더불어 사는 것이 불법승 삼보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향과 스님은 생각한다. 수행자는 대중사이에서 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게을러질 수 있음을 우려하였다. “머리를 깎고 산다는 것 이 자체가 공인 중의 공인이며, 공인이라면 사람들과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출가자의 삶 자체가 수행이 되어야 하며, 이것은 또한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어 포교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런 의미로 수행과 포교는 둘이 아니라고 절집에서는 말하는 것이지요.” 참선을 할 때 화두의 중요성에 대해 물었더니 “화두는 남이 주는 것보다 자신이 만드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하였다. 자기가 일으켜야 할 의문인데, 그것이 스스로 잘 안되니까 주입식으로 의심을 일으키도록 ‘이 뭣고’ 라든가 ‘무(無)’자 화두를 주는 것이란다. 화두만이 선이 아니라고 한다. ‘나무아미타불이나 석가모니불 명호를 화두처럼 염한다면 화두선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말씀이 참으로 신선하게 들렸다. 바다에 그물을 쳐 놓으면 그물코만 잡아당기면 그물이 다 잡아올려지듯이, 어느 것이라도 진심으로 염한다면 팔만장경도 하나로 다 들어올려질 수 있단다. 향과 스님은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공부해야 하며, 시간이 없다면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공부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향과 스님의 말씀에 이끌려 시간을 잊고 있었는데, 창호문 밖에서 후드득거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빗소리가 먼 세상 밖의 소리같았다. 글·사진=문윤정(수필가·본지논설위원)
출처:부다피아/편집:(http://dochang.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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