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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좋은글 올려주십시오.한발 다가서는 좋은 인연을 반깁니다.부처님은 밝은 마음에 복을 주십니다.
      작성자 法性行
      작성일 2013-06-23 (일) 05:45
      ㆍ조회: 922  
      욕망도 분별도 내려 놓은 곳...운부암(雲浮庵)

       

                                     욕망도 분별도 내려 놓은 곳...운부암(雲浮庵)

       

       

      신일지

       

      팔공산 오도암을 다녀온 일주일 후 오도암주 금모(金毛)스님이 선원장으로 계시는 은해사 운부암을 찾았다. 

      속세의 몸을 벗은 이들이 영면하는 또다른 안식처 은해사수림장을 지나 운부암으로 가는 길은, 멀어지는 속세와

      가까와지는 피안(彼岸)과의 경계다. 그 경계를 넘나드는 길에 호수가 있다. 큰 유리판을 얹어 놓은 듯, 온 산을

      거꾸로 품어 안은 채 움직임이 없다. 호수의 이름은 신일지다. 은해사에서 1km정도에 있는 이 호수는 은해사

      부속암자와 관봉 갓바위로 가는 갈림길이다.

       

      여기서 2.5km 곧장가면 운부암이고 왼쪽으로 들어서면 비구니 참선도량 백흥암을 비롯한 중앙암, 묘봉암,갓바

      위로 가는 길이다.

       

       

       

       

       운부암 표지석.

       

      운부암 영지(影池)를 지나 입구 오른쪽의 표지석에는 운부선원(雲浮禪院) 조사도량(祖師道場)이라 음각(陰刻)

      되어 있다. 자세히 보니 운부선원(雲浮禪院) 이란 글씨 위에 붉은 글씨로 "남(南)"자가 쓰여있고, 그 오른쪽에

      "북마하(北摩) 남운부(南雲浮)"라는 작은 글씨를 새겨 놓았다.

       

      "북마하 남운부(北摩訶 南雲浮)"란, 옛날부터 최고의 수행처로 북쪽에서는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을 남쪽에서

      팔공산 운부암을 꼽았다. ‘영남의 3대 수행도량’으로는 선산 도리사와 팔공산 성전암 그리고 비슬산 도성암

      꼽는데, 운부암이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선원을 열지 못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근현대를 대표하는 선지식 성철 스님은 이 도량에서 홀로 한 철 수행을 하고 두 철 있을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향곡 스님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떠났는데 “내 공부는 여기서 끝났다”고 말 했다고 전해진다. 성철 스님

      뿐이 아니다. 경허,동산, 운봉, 경봉, 향곡, 한암, 청담 스님 등 선지식들이 두루 거쳐 간 수승한 도량이다.

       

      그러나 48년이나 선방 문이 닫혀 있다가 1998년 지금의 선원장 불산(금모)스님이 법타(法陀) 스님을 모시고

      시 문을 열어, 적게는 30안거(15년)에서 많게는 80안거(40년)를 일념정진 해 온 10명의 구참(舊參)수좌

      (首座)들이 정진하는 참선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운부암은 실상 산문의 개조인 홍척국사(洪陟國師)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창건주와 그 시기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이 있다."동국여지승람"에 운부사(雲浮寺)로 따로 기록되어 있을 만큼 본래는 독립된 대찰이었다고 한다.  

       

       

       

       

                   

       

                 연못의 아기 부처상. 천진스런 얼굴에 해맑게 웃는 모습으로 조성된 석불(石佛)이다.

                 혹자는 묵언정진하는 참선도량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지 모르겠으나,오도암의

                 "못난 이 부처"에 대해 가진 나의 편견이 내 미혹함의 극치였음을 깨달은 후로는, 사찰에 조성된

                 어떤 시설물에 조금이라도 참견하는 마음을 버리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을 조성한 깊은 뜻을 알 길 없는 데, 좁은 식견의 눈으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 할 것

                 인가...

       

                 다만, 정말로 아닌 것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글에서 읽기도 하였지만 직접 보기도 한 사찰의 석등(石燈)이야기다. 

       

                                                      

                                                                  일본식 "카스가" 석등

       

                 우리의 전통사찰에 설치된 석등은 기와의 용마루 같이 끝으로 갈수록 약간 오므려 내렸다가 끝을

                 살짝 들어올리는 형태다.그런데 요즈음 중창불사랍시고 전각 앞에 세우는 석등중에는 알고 하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일본식의 소위 "카스가 석등"이 눈에 띈다. 이 석등은 그 원산지가 일본 나라(奈良)

                 의 "카스가 신사(春日神社)"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우리의 전통석등과 달리 끝을 달팽이나 고사리

                 모양으로 오그려 놓았다. 고요한 산사(山寺)가 아니라 무당굴 같이 번잡한 일본 신사(神社)로 만들

                 어 놓을 참인가...... 

       

       

       

       

       

       

                                                          부처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어디........

       

       

       

       

       

      보화루(寶華樓)를 오르는 돌계단.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산다는 주목을 지나 선(禪)의 세계로 들어가는

      계단이다.  ‘보화(寶華)’란 뛰어나게 존귀한 보배로운 꽃으로, 부처님이 앉아계신 연화대좌(蓮花大座)를 말한다.

      법화경 비유품에 보화승족(寶華承足)이란 말에서 유래하였다.

       

      운부암 보화루(寶華樓)가 정확히 언제 지어졌는 지는 알 수 없다.다만 기록에 원통전 등과 더불어 1862년 부터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보화루는 이 곳 외에도 추사 김정희의 편액 글씨인 은해사 본사 보화루를 비롯해 백흥암에도 있는데, 이쪽 사찰

      들이 누각 이름으로 보화루를 선호했던 듯 하다.보화루(寶華樓)라는 이름을 "화엄경을 보배로 여긴다"고 해석하

      화엄경(華嚴經)에 사상의 중심을 두었거나 영,정조시대 화엄교학으로 이름을 떨치던 영파 성규(影波 )

      (1728~1812)스님이 이 산중에 머무른 영향 일 수도 있다고 한다.

       

       

       

       

       

       

       

       

       보화루의 창(바라지창)은 5개가 있는데 그 크기가 다르다.중간 것이 제일 크고 양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작다.

      창문 아래의 하인방(下引枋)을 조금씩 높이는 방법으로 점차 작아지도록 하였다.

       

      "심인보"先生은『곱게 늙은 절집』이란 책에서 이렇게 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바라지창은 완만한 V자 선형을 이룬다.건물의 귀퉁이를 들어 올리는 느낌이다.지붕 처마의 곡선과 바라지창의

      선이 조화를 이룬다. 우리 전통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귀솟음"효과를 내고있다."귀솟음"이란 중간 기둥보다

      모서리 기둥을 더 높게 하여 날아갈 듯 하늘로 향하는 처마 곡선을 만들어 내는 전통 건축기법이다.

      아름다운 처마 곡선은 선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건물을 안정감 있게 보이게도 한다.

       

      편액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낸 해관(海觀) 유한익(劉漢翼)의 글씨다.

       

       

       

       

       

       

                   

       

                            몸은 땅에 낮추고 눈은 발등 높이에 맞추니 보화루가 꽃구름 위에 떠있다.....

                            낮춘 만큼 높이 보이고 비운 만큼 채워 지는 법이다.

       

       

       

       

       

       

      보화루를 처음 보는 순간 한국 서원(書院)건축의 백미라 불리는 안동의 병산서원(屛山書院) 만대루(晩對樓)가

      떠 올랐다. 안동 묵계서원(默溪書院)의 읍청루(揖淸樓)는 보화루와 같은 정면 5칸의 누각이지만, 인공으로 둥

      게 깍은 긴 기둥은 늘씬한 다리미인을 연상케 하는 점에서 보화루의 자연적이고 소박단아한 느낌과는 다르다.

       

      7폭 병풍을 펼쳐 놓은 듯, 자신을 열어 밖의 자연을 안으로 끌어들인 병산서원 만대루의 굽고 휜 기둥과 보에서

      풍기는, 자연스럽되 절제된 아름다움이 여기에도 있었다.

       

       

       

       

       

       

       

      갈색의 말간 속살을 드러낸 보화루 내부에는 늘 찻상이 준비되어 있다.

      맺으면 풀어야하는 여유를 가지는 시간을 가지는 곳이다. 그 여유의 공간에 걸맞게 보화루 안에는 조선후기 실

      학자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가 지은 팔봉대사진찬(八峰大師眞讚)이란 판각이 걸려있다. 팔봉대사가 누구며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쓰여진 글의 내용으로 보아 흉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임을 알 수있다.

       

                                      길게 선 것은 코, 가로 누운 것은 눈썹이요

                                      모난 입, 튀어나온 광대뼈가 닮지 않은 것이 없다

                                      문도들이 와서 보고 "진짜 우리 스님"이라 한다

                                      그림 그린 이가 크게 웃으며 여러 스님들에게 말했다

                                      그림으로야 아무래도 이 정도일 뿐이니 그대들 스승을

                                      진정으로 보고자 한다면 어찌 그림 밖에서 구하지 않는고

       

                                     『 물결 없는 맑은 못에 둥두럿한 가을달이요

                                         구름 걷힌 푸른 하늘에 한 떼의 두루미로다 』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번역-

       

       

       

       

       

       

              붉은 어두움과 까만 밝음....바라지창틀이 그은 속세와의 경계다.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경계다.

       

       

       

       

       

       

       운부암은 중앙에 마당을 두고 의 형태로 건물을 배치하는 산지중정형(山地中庭形) 가람구조를 하고 있다.

       이는 전학후묘(前學後墓)의 양식을 취하는 서원(書院)의 구조와 흡사하다. 전학후묘(前學後墓)란 서원의 앞

       쪽에 강학공간을 두고 뒤쪽으로 배향공간인 사당을 배치하는 것을 일컫는다.

       

       강학당을 중심으로 좌우로 유생들의 기숙공간인 동재와 서재를 두고 정면에는 휴식공간인 누각을 두는데,

       운부암 보화루의 기능 또한 그와 다르지 다.

       

       마당 한편에는 서원이나 사당에서 흔히 보이는 배롱나무(나무백일홍)가 한 그루 서 있어, 보이는 모습으로는

       서원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운부암의 주전각(主殿閣)인 원통전(圓通殿)

       

                  원통전(圓通殿)은 19세기 후반에 중건된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운부암의 경내는 비교적 좁은 편인데, 관음전은 이 지세(地勢)에 거슬리지 않게 적당하게 아담

                  하면서도 품위 있게 자리잡고 있다.

       

                  석등(石燈)은 빛을 밝혀주며 중생에게는 무명(無明)을 일깨우는 진리의 상징인 공양구이다.

                  원통전 앞에 있는 작은 탑은 지대석(地臺石)과 간주석(干柱石)의 부분, 옥개석(屋蓋石), 보주

                  (寶珠)만 남아 있어 석등으로 추정할 수 있다.

       

                                                                                     

       

                  나는 이 곳이 선(禪)수행을 하는 도량이라 주련의 내용도 색다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느사찰의

                  관음전이나 원통전에 많이 쓰이는 글귀와 같다.

       

                  원통전(圓通殿)주련(柱聯)의 내용이다.

       

                  白衣觀音無說說 (백의관음무설설)  흰 옷 입은 관음보살 설함 없이 설하고

                  南巡童子不聞聞 (남순동자불문문)  남순동자는 들음 없이 들으시네

                  甁上綠楊三際夏 (병상록양삼제하)  병에 꽂힌 푸른 버들은 언제나 여름이요

                  巖前翠竹十方春 (암전취죽시방춘)  바위 앞에 푸른 대나무 시방의 봄이로세

       

                  관세음 보살은 말하지 않아도 남순동자(관세음 보살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분)는 그 뜻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모두 알아듣는다.불법(佛法)을 모두 알고 보니 이 세상 모두가 아름답게

                  보이고 환희로워진다.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관세음 보살의 공덕을 찬탄하는 게송이다.

       

       

       

       

       

       

       원통전의 단청은 퇴색하였으나 아름답다.속살 비치는 엷은 비단 옷을 입은 그윽한 아름다움이다.

       원통전과 운부난야의 편액은 연암 박지원의 손자이며 철종때 경상감사를 지낸 구한말 개화사상가 환재 박규

       (桓齋 朴珪壽)가 쓴 것이다.

       

       

       

       

       

                    

                    

                   

                  통전에는 보물 제 514호인 청동 관음보살 좌상이 있다. 금동장식의 화려한 이 불상은 신라 말에

                 혜철국사가 인도에서 해금강으로 들어오는 배 안에서 모셔왔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 1.02m의 아담한 이 불상은 화염(火焰)에 싸인 보주와 용, 봉황, 꽃 등으로 장식한 화려한 관

                (冠)을쓰고 있다. 앞으로 숙인 구부정한 자세가 특징으로 머리에 쓴 화려한 보관 가운데 화불(化佛)

                 로 보아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원통전의 규모에 맞게 비록 그 크기는 작으나 풍기는 위용과

                 아름다움은 보는 이들을 압도하고 찬탄케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지금은 유리벽을 만들어 불상의 훼손을 방지하고 있다. 불상 정면의 사진은 아무리 애를써도

                 유리에 카메라의 불빛이 반사되거나 내 모습이 비쳐져 위의 사진은 문화재자료에서 빌려온 것이다.

                 

                 탱화는 중앙에 설법인(說法印)을 취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를

                 이루며, 아난과 가섭존자가 뒤에 배치된 단순한 구도의 삼존불화이다.

       

       

       

       

                     

                    

                 얼굴은 눈꼬리가 약간 올라간 갸름한 형태이며, 온 몸을 휘감은 구슬장식이 무척 화려한 모습이다.

                 신체 표현은 굴곡 없이 수평적으로 처리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목에  있는 띠 주름식의 삼도(三道), 가슴 아래 띠로 묶은 매듭 표현, 양 다리에 대칭적으로 흘러

                 내린 옷주름 등은 조선 초기 보살상의 전형적인 양식이라 한다.

       

       

       

       

       

      어간문(御間門)을 통해서 본 보화루

       

      운부암의 모든 전각이 소박하듯 원통전의 창살도 그러하다. 화려한 꽃창살의 정교한 아름다움도 멋 있지만

      단순한 창살은 주위와 어울려 그것대로 조화롭게 품은 멋이 한층있다.

      저 창살의 구획(區劃)된 좁은 칸처럼 작은 무엇에 내 마음을 가두어 놓고 있지는 않은지...........

       

       

       

       

      선방(禪房) 운부난야(雲浮蘭若)

       

      난야(蘭若)는 범어(梵語)의 음역(音譯)인 아란야(阿蘭若:Aranya)의 준말로,적정(寂靜),공한(空閒)한 비구(比丘)

      의 수행처, 즉 고요하여 수행하기 좋은 선원(禪院)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태여 원뜻을 해석하지 않고 漢字만 풀어도 난초 가득한 화원위에 구름이 떠 있는 곳인데 수행하기 좋지 않다

      하겠는가....

       

       

        

       

       

       

                   

       

                     운부난야의 목탁

       

                  빗자루는 마루를 쓸던 마음의 먼지를 털어 쓸던 그 용도는 분명하다. 큰 목탁의 용도는 무엇일까.

                  예불용은 아닐 터이고 선방에 보내는 신호용으로 쓰여지는 것인가 보다.

                     학교에서 치는 종(鐘)처럼....

       

                     어느 선방에서나 마찬가지로 이 곳의 선방 대중들도 새벽 예불과 저녁 예불을 참선으로 대신하고

                  사시(巳時) 예불만 모신다고 한다. 

       

       

       


       후원(後園)에서 본 운부난야(雲浮蘭若)

       

       

       

       

       

      원통전 오른쪽의 우의당(禹義堂)벽에 그려져 있는 달마도.정숙을 요구하는 글이 쓰여있다.

      운부암에는 참배시 조용히 해달라는 글귀와 출입을 금한다는 푯말이 곳곳에 있다.들어서는 보화루의 기둥에도

      원통전 앞 마당에 세워진 작은 기왓장에도 같은 내용의 글이 쓰여있다.

       

                                                                   

       

      선(禪)의 생명이자 목적은 깨달음이다. 큰 깨달음(大悟)이다.깨달은 중생이 곧 부처다.

      깨달은 중생이 되고자하는 그들의 피나는 자신과의 싸움과 자신에 대한 엄격한 송곳을 세우는데 방해할 자격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다. 한글로 쓰여있는 처처곳곳의 이 문구에도 불구하고 십여명의 아줌마들이 아랑곳하지 않

      고 떠들어대는 결례의 행동을 보고 하는 말이다. 떨어&

      이름아이콘 道窓스님
      2009-06-23 23:10
       .

         
      이름아이콘 대원심
      2013-06-25 07:44
      회원캐릭터
      고맙습니다._()_ ()_()_
         
      이름아이콘 원명화
      2013-06-25 22:59
      회원캐릭터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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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3 庵子암자순례 - 영취산 서운암 [4] 동건이 2015-11-17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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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0 강릉 등명락가사에 가다 [2] 道窓스님 2005-08-03 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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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8 한국의 명사찰 동영상 [5] 까미유끌로땔 2005-02-13 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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