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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道窓스님
작성일 2006-10-25 (수) 09:22
ㆍ조회: 365  
경남 표충사

경남 밀양

유교를 끌어들여 부활한 절간, 표충사

표충사는 특이한 구석이 있는 절간이다. 이름부터 불교적이지 못하다. 충성을 드러내어 기리는 절이라는 뜻이니 오히려 유교적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웠고, 전쟁 끝난 뒤에 사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왜적들에게 본때를 보여준 사명대사와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 그리고 기허대사 등 3분의 스님을 받드는 절이다. 스님의 충성이니 불교와 유교가 적절히 결합하고 있다.

▲ 표충사 입구, 일주문은 아니지만 일주문 역할을 한다. 걸린 표어에서도 유교와 불교가 결합하고 있다.
ⓒ 신병철
표충사는 웬만한 절과 마찬가지로 통일신라 때 처음 세웠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부근의 암자에서 이곳 재약산 대밭 부근에 오색의 성스러운 구름을 보고 죽림사라는 절을 지었단다.

신라 말기 흥덕왕때 왕자가 풍병이 들었는데, 이곳의 샘물을 먹고 나았단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크게 짓고 이름을 영정사라고 했단다. 역시 권력과 신비로움을 더해 절간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런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는데, 17세기 초에 혜징선사가 중건했단다. 그러나 숭유억불의 기치가 살아 있는 동안 사세는 별로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의 표충사는 1839년 천유선사라는 분의 지혜로운 노력으로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족적 자존을 세운 사명대사와 그의 스승 서산대사, 기허 등의 기리는 사당이 있었는데, 천유는 이 사당을 절안으로 끌어들여왔다. 이름도 그 사당 표충사(表忠祠)의 이름을 따 표충사(表忠寺)라고 했다.

▲ 표충사(당), 원래 사명대사,서산대사,기허대사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원래의 것은 부근에 있었으나, 절 안으로 끌어왔고, 다시 크게 지었다.
ⓒ 신병철
나라에 충성을 바친 스님들의 위패와 진영을 끌어들여 불교 사찰을 일으켰던 것이다. 나아가 위대한 유학자들을 배향한 서원도 세우고 여기에 역시 3분을 모시고 이름도 표충서원이라 했다. 유학자 아닌 스님을 배향하는 서원이 절 안에 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었다. 표충사는 국가적 이념인 유학이 민중의 신앙에 밀려서 국가적 통제력이 약화된 시기에 나타난 유교와 불교가 교묘하게 결합한 특이한 절간이라 추측되었다.

▲ 표충사 가람배치, 동서로 길게 뻗은 지형에 남향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신병철
표충사는 경사진 언덕에 동서로 길쭉하게 여러 개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크게 4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주문(실제로는 일주문이 아니다)부터 사천왕문에 이르는 제1영역은 생활공간이자 유교적 공간이다. 스님들의 위패가 서원과 사당에 들어가서 편안할까 걱정도 된다. 북쪽에는 남쪽을 보면서 표충사(당)와 표충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남쪽에는 스님들의 생활공간과 상점이 자리 잡고 있다.

제1영역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사천왕문이 나타난다.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면서 올라가노라면 문 안에는 비범한 세상이 전개될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문은 출입을 통제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경지를 표현하는 역할도 한다.

▲ 사천왕문, 높은 계단 위에 서 있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다.
ⓒ 신병철
"애야, 서영아, 저기 좀 봐. 저 사람 엄청 아프겠지."
"나쁜 짓하면 저렇게 벌 받는 거야."
"나쁜 일 하면 되겠어, 안 되겠어?"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딸애에게 젊은 엄마가 사천왕에게 밟혀 고통으로 신음하는 잡귀들의 모습을 교재로 가정교육과 도덕과목을 학습하고 있었다. 어느 잡귀는 반듯이 누워 혀를 내밀고 있었다. 누군가 그 위에 동전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소원을 빌고는 틀림없이 그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 확신했을 것이다. 정성은 이렇게 돈으로 표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많다.

저 잡귀들은 저 고통을 겪고 나면 생전의 죄가 조금씩 줄어든단다. 그래서 고통 가운데서도 환희를 느끼고 있으니 그것을 열복이라고 한단다. 고통과 환희가 겹치는 표정을 가장 잘 짓고 있는 사천왕문은 어디일까? 안성 칠장사 사천왕문과 공주 무량사 사천왕문이 빼어난 문이라고 하던데, 그 곳의 열복이 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 사천왕문 열복, 저렇게 고통을 받으면 생전의 죄가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에 고통이 환희이기도 하단다.
ⓒ 신병철
사천왕문을 통과하면 이제 제2영역이다. 중앙에 삼층석탑이 수직으로 솟아 있다. 얼핏 봐도 2중기단에 3층탑신, 자세히 보면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4단인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의 탑임을 알 수 있다. 상륜부는 많이 훼손되어 찰주만 보인다. 9세기 전반 흥덕왕때 영정사를 세웠다는 기록이 전혀 허구만은 아닌 듯싶다. 석탑 앞의 석등도 통일신라 때의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을 띠고 있다.

석탑 다음으로 표충사에서 오래된 유물은 이곳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고려 때 만든 청동은입사향완이다. 향을 피워 담은 둥글고 큰 그릇이다. 청동그릇 표면에 용과 글자 등을 긁어내고 그 곳에 은을 실처럼 만들어 쪼아 넣었다. 받침대 목에 힘찬 용이 새겨져 있어 부처님의 권능을 느끼게 한다. 이 기법을 청자에 응용한 것이 상감법이고 그래서 고려의 상감청자가 생겨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향완 중에서 잘 만들고 가장 오래된 것이어서 국보로 지정되어 보관하고 있다.

▲ 3층석탑과 향완, 표충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들이다. 석탑은 통일신라 말기에 절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향완은 고려때 융성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신병철
제2영역과 위로 올라가는 계단 북쪽에 응진전이 있다. 단청이 퇴색된 모양이 제법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석가 부처님을 중앙에 모시고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은 성인들이 도열하고 있다. 생김이 각양각색이다. 생김만큼이나 성질도 다양할 것으로 보인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소원은 부처님보다는 이런 개성을 지닌 분들에게 말해야 통할 것 같다.

계단을 올라서면 표충사의 중심공간이 나타난다. 북쪽에서 남쪽을 보고 팔상전과 대광전이 나란히 서 있고, 그 맞은편에 큼직한 마루를 지닌 건물이 시원히 서 있다. 19세기 전반에 세웠으니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중심법당인 대광전은 불타버린 것을 20세기 전반에 다시 세웠단다. 오래된 절간의 높은 품격을 만날 것을 생각한 방문객은 조금은 실망을 느낄 것 같다. 옆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8폭의 그림으로 그려 전시한 팔상전이 있다.

▲ 팔상전, 부처님의 일생을 8폭의 그림으로 표시했다. 표충사 자리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신병철
그러나 맞은편의 누각 건물은 마룻바닥의 누대를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하고 있어서 퍽 맘에 들었다. 바람도 항상 시원하게 불고 있었다. 대광전 중앙의 문을 열어 두면 비로자나부처님도 한 눈에 들어왔다.

"당신 둘째 형님은 요즘 뭐하고 사시나?"
"글쎄, 직장 그만둔 지도 1년이 넘었는데, 도대체 뭐하는지 알 수가 없어."
"당신 동생은 뭐? 중국 간다면서. 여기서도 항상 어려운데 중국가면 좀 풀릴까?"
"참 큰일이야."

기둥에 기대앉은 부부의 나지막한 삶의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대광전 부처님도 듣고 계시리라. 그러고 보니 누대를 개방한 이유를 알만하다. 오가다 쉬는 사람들의 맘속의 소리를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누대는 부처님을 향한 민중의 진솔한 신문고였다.

▲ 대광전 앞 개방된 누대, 다른 절과 달리 시원스레 개방하고 있다. 부처님이 세상 사람들의 진실된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 신병철
또 하나의 계단을 올라가면 최상의 영역 제4영역이다. 남북이 아닌 동서로 길쭉한 지형이어서 그런지 가장 높은 곳인 이곳에는 명부전과 관음전이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다. 제3영역을 중심 영역으로 삼고 지형상 높지만 제4영역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보살들의 영역으로 삼았다. 명부전은 19세기의 모습이지만 관음전은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표충사는 참으로 특이한 구석이 많은 절이다. 동서로 길게 경사진 지형을 따라 가람이 배치된 점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들은 남향하고 있으니 건물방향의 축은 짧은 편이다. 동서로 이어지는 지형을 따라 중심법당 대광전을 두어 법신불 대일여래를 모시고, 나란히 팔상전을 두어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셨다. 여유 공간에 나한과 지장·관음보살을 모시고 있어 웬만한 격을 다 갖추었다고 하겠다.

▲ 표충사 중심 공간
ⓒ 신병철
가장 특이한 점은 뭐니 뭐니 해도 유교와 불교가 결합하고 있는 점일 게다. 19세기 세도정치가 횡행하던 시절, 국가적 이념 통제가 줄어들었고, 불교에 매달리고 싶은 사람들은 유교를 끌어들여와 안전장치로 삼고 불교를 키우고자 했다. 나라를 구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사명, 서산대사 등 스님들의 충성을 매개로 절간을 재생시켰다. 이름에도 충성을 부각시켰고, 부근에 있는 사당도 끌어오고 그들을 배향하는 서원도 세웠다. 세상에! 스님들을 배향하는 서원이라니.

유교는 종교로서는 부족한 구석이 많다. 내세를 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지지도 않는다. 이런 종교적 기능은 조선시대에도 불교가 담당했다. 밀양지역에서 종교역할을 담당할 절간을 세우면서 온갖 유교적 요소를 덧붙여 안전장치를 튼튼히 한 것이 아닐까? 조선 중기까지는 도대체 형식적으로 융화하기 힘들었던 유교와 불교 두 요소가 조선 말기에 결합하여 나타나기도 했으니......

* 오마이뉴스/신병철기자(2006.10.23)

출처:운주유악(運籌帷幄) http://blog.naver.com/kmbira
이름아이콘 선덕화
2006-10-25 22:46
 _()_()_()_
   
이름아이콘 우주
2006-11-04 03:56
 _()_()_()_
   
이름아이콘 묘락행
2006-11-06 12:46
 _()_()_()_감사합니다.
   
이름아이콘 德山
2008-03-16 00:01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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