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사 도창스님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좋은글 올려주십시오.한발 다가서는 좋은 인연을 반깁니다.부처님은 밝은 마음에 복을 주십니다.

ㆍ작성자	法性行
ㆍ작성일	2009-06-02 (화) 23:58

ㆍ조회: 1014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합천 해인사

합천 해인사 대웅전

해인도 탑돌이

이 털신의 임자가 윗사진에 있을런지...

물맛이 끝내주는 해인사 약수

몰래 찍은 팔만대장경

사천왕문 쪽에서 바라 본 일주문

-합천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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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만 있는 게 아닙니다'

월광사터 3층 석탑, 매화산 청량사 등 새로운 볼거리

유난히 더웠던 이 여름도 아름드리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그 힘을 이미 잃었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실감되는 지난 일요일 9월 5일, 바다를 그리워할 만큼 뭍 깊숙이 자리 잡은 합천 해인사를 찾았습니다. 언제라고 그렇지 않을까마는 사람과 차량의 뒤엉킴 속에서 왁자지껄한 모습을 오늘도 대가람 해인사는 다 받아 주고 있었습니다.

▲ 최치원의 혼이 서린 학사대에서 바라본 해인사 전경

부처님의 말씀이 아로 새겨진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어 법보 사찰로 불리는 해인사는 통도사,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삼보 사찰 중의 하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거느리고 있는 부속 암자의 수나 경내의 건물 규모를 놓고 볼 때 법보 사찰이라는 상징적 대표성과 유구한 역사를 차치하고라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가람입니다.

해인사에는 199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판과 그 경판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이 있습니다. 그것도 절집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관람객들로 하여금 가장 늦게 그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해인사의 중심이요, 해인사 여행의 목적지인 셈입니다. 수다라장과 법보전이라는 현판을 걸고 나란히 세워져 있는 장경판전 주변은 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밀물처럼 몰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어수선함 속에서 스님의 독경 소리마저 묻혀 버리고 맙니다.

저 역시 해인사엘 가면 높은 석축 기단 위에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정연하게 세워진 장경판전과 그 창틈으로 만나게 되는 팔만대장경판을 반드시 둘러봅니다. 하지만, 그 유명하고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묻히게 되는 소중한 유물과 볼거리가 적지 않습니다. 해인사가 아닌 여느 곳 같았으면 사람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았을 절집의 중심이자 얼굴 역할을 할 법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오로지 팔만대장경만을 위해 오르는 길목에서 눈길 한 번 받지 않아 수북한 먼지와 거미줄이 내려 앉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혹은 철근 울타리가 잡풀에 덮여 있기 일쑤고, 새롭게 단장했지만 찾는 이가 없어 오히려 을씨년스러운 곳도 있습니다.

▲ 월광사터 석탑 두 기

전국 어디에서건 해인사에 가려면 88고속도로 해인사 나들목을 빠져 나와 가야산국립공원에 이르는 막다른 길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모양도 가지각색인 산들과 넓지는 않지만 풍요로운 들판을 함께 느끼며 가는 포근한 길입니다. 해인사가 가까워질수록 숙박시설과 상점, 식당들이 도로 양 옆을 어지럽히고 있지만 하얗게 부서지는 해인사 계곡의 물소리는 그 어느 곳보다 시원합니다. 해인사는 그 유명세만큼이나 절 입구와 주차장 주변이 소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아주 차분하고 애틋한 정서를 안기는 해인사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88고속도로 해인사 나들목에서 빠져 나와 우회전하자마자 1분도 채 못 되어 도로 왼편으로 난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월광사터 3층석탑 두 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후기 신라 시대의 것으로, 형태와 양식이 비슷하면서도 달라, 따로 또 같이 형제처럼 세워져 있는 두 탑. 그 단정한 모습도 볼거리지만 신라의 공격을 받아 연맹체 국가 가야라는 이름을 역사 속에 영원히 묻을 수밖에 없었던 대가야의 마지막 왕 월광태자의 한이 서린 곳이어서 애틋함을 줍니다.

두 탑이 갇힌 울타리 옆으로 월광사터의 비애를 담은 시비가 서 있습니다. 게다가 지붕돌의 모서리가 모두 잘려 나간 서쪽 탑을 아무렇게나 자란 소나무가 반쯤 덮고 있어 탑의 윗부분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습니다. 더구나 관리하는 사람은커녕 찾는 이조차 드물어서인지 울타리 안의 훌쩍 자라 버린 잡풀이 탑의 기단부를 덮어 애틋함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그늘이 진 시비 앞 벤치에 앉아 두 탑을 멍하니 바라보노라면 왠지 모를 차분함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월광사터가 비록 해인사에 딸려 있는 말사에 불과하다지만, 쓸쓸하면서도 차분한 그 느낌은 왁자지껄한 해인사에서의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 가야산 남산제일봉 등산로에서 올려다본 매화산과 청량사

경상북도 성주로 넘어가는 삼거리를 지나 조금 가다 왼편으로 난 좁고 비탈진 길을 5분쯤 오르면 해인사, 또 앞서 들러본 월광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청량사에 이르게 됩니다. 가파른 매화산 중턱에 올려 놓으려다 보니 경사가 심해 절터로 삼기는 어려운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거대한 석축을 쌓고 높은 계단을 통해 경내를 둘러보도록 자리 잡았습니다.

본디 청량사로 오르는 길은 가야산 남산제일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입니다. 그래서인지 청량사를 찾는 이들은 십중팔구 등산복 차림입니다. 산에 오르다가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둘러보는 곳일 뿐입니다. 우람한 건물을 새로 지었고, 법당 앞 중정도 근사하게 다듬었으며, 비탈진 곳을 돋워 널찍하게 주차장도 갖추었지만, 곧장 해인사로 향하는 이들의 발길은 좀처럼 붙잡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청량사 역시 해인사가 거느린 부속 사찰에 불과하지만 해인사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두 가지의 볼거리를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거대한 석축을 쌓아 만들어진 법당 앞 중정에서 내려다 본 가야산 자락의 장쾌한 경관입니다. 이것은 흡사 부석사 무량수전 앞 중정에서 내려다 본 태백산 자락의 장관에 견줄 만합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녹색의 파도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후련하게 만듭니다.

▲ 청량사 석등과 녹색 물결 같은 가야산 능선

또 다른 하나는 멋들어진 석등과 석불상을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웬만한 절집이라면 석등 하나쯤은 다 갖춰져 있지만, 청량사의 것처럼 안정되고 튼실해 보이면서도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긴 아름다운 석등은 만나보질 못했습니다. 화려하고 크기만한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도, 단정하고 매끈하기만한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도, 크고 독특한 형식을 보여주는 법주사 석등도 그 나름의 멋은 지녔지만, 군더더기는 빼면서 그 모든 멋을 다 아우르는 석등은 청량사의 그것이라 자부합니다. 높은 석축 끝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합천 영암사의 쌍사자 석등과도 닮아 있습니다.

▲ 듬직한 자태의 청량사 석불좌상

울긋불긋 단청이 오히려 더 어색한 새로 지은 청량사 대웅전 안에는 건물 크기로 인해 왜소하게 보이는 석불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세월의 무게로 표면이 마모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항마촉지인을 하고 앉은 근엄한 자태는 여느 석불상과는 격이 다릅니다. 대좌와 광배까지 완전하게 갖추고 있는 보기 드문 걸작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해인사 계곡을 벗하며 일주문에 이르는 길은 물소리도 묻힐 만큼 호객꾼들의 요란한 소리로 시끄럽습니다. 계곡의 물소리가 제 모습을 찾을 즈음 해인사 관광 안내도 곁에 그리 크지 않은 까만 탑을 만나게 됩니다. 이상하게도 이 탑에 대한 안내판은 앞이 아닌, 길에서 먼 탑 뒤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읽는 사람이 있을 리 없고, 안내판에는 먼지와 거미줄만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해인사 길상탑입니다.

▲ 입구에 쓸쓸하게 서 있는 해인사 묘길상탑

안내판을 읽노라니 이것은 불탑도 묘탑도 아닌 위령탑입니다. 후기 신라 해인사에 쳐들어 온 무리들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승려들의 원혼을 달래는 의미에서 세웠다니 해인사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되 불살생이라는 불교 교리와는 동떨어진 듯한 흔치 않은 유물입니다. 후기 신라라면 경주의 중앙 권력과 그들과 결탁한 교종 계열의 사찰들이 급격히 위축되는 시기이니, 그 시기 천하를 호령했던 중심 사찰로써 해인사는 지방 세력과 백성들의 돌팔매를 피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료로서 그저 스쳐 지나쳐서는 안 되는 해인사의 보물입니다.

▲ 해인사 일주문 곁에 세워진 원표석

해인사 일주문 바로 곁에는 오벨리스크 모양의 작은 돌기둥이 세워져 있습니다. 세워 놓은 지는 해인사의 역사만큼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큼지막하게 새겨진 글씨를 보니 원표(元標)임을 알려 줍니다. 인근의 고을까지의 거리를 기둥의 사방 밑둥 부분에 적어 놓았습니다. 현재도 도시의 관공서나 시내 중심지 부근에 방향과 거리를 적어 놓은 원표가 널리 활용되는 것을 보면 뭐 그리 특이하달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절집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원표가 절 입구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법보 사찰 해인사의 위상과 권위를 알려주는 지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팔만대장경을 만나러 가는 길이지만,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